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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시(無視)가 아닌 관심(關心)을

2026년 8월 16일

우리말 사전에 보면 무시(無視)는 ‘눈여겨보지 않음’, ‘사물의 존재나 가치를 알아주지 아니함’, ‘사람을 업신여김’, ‘깔봄’이란 뜻이다. ‘무시하다’ 또는 ‘무시당하다’와 같은 형태로 쓰인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겪는 감정은 ‘무시(無視)’가 아닐까 싶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며 경멸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병폐로 잔혹한 폭력이다. 집단 따돌림은 낯선 일이 아니다. 과도한 우월감과 특권의식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알랭 드 보통(Alan de Botton)은 그의 저서 《불안》(원제, Satus Anxiety, 은행나무, 2012))에서 사람들의 무시가 존재 상실감을 야기하고, 관심이 존재감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임을 강조하였다. 타인의 시선과 인정이 인간 존재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을 시사한다.

 수많은 갈등과 분열, 계층 및 세대 간의 단절, 악성 댓글 등의 근저엔 모두 ‘무시’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능력주의,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사회는 타인을 향한 판단과 평가를 오직 외형에만 의지하려는 경향성이 강해진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일정한 틀 안에서 행동하는 것을 발견하는데, 좀 부족해 보인다 싶으면 거침없이 무례를 범하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가 그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말은 평등을 말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런가? 타인을 인격의 주체가 아닌 목적을 위한 도구나 수단, 하위 존재로 취급하는 권력상 오만을 잘 나타내는 태도라 할 것이다.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Ich und Du, 1923)에서 인간관계를 ‘나와 너’(Ich-Du)의 인격적 관계와 ‘나와 그것’(Ich-Es)의 도구적 관계로 구분하였다. 상대가 자신에게 유익한지 따져 ‘그것’으로 대하기에, 언제든 무시할 수 있고, 무시당할 수 있음이다.

 이런 무시의 메커니즘이 순환한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인데, 시집살이 호되게 한 며느리가 더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하지 않은가? 자기보다 더 약한 상대를 향해 쏟아붓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자행되는 악행들이 그것이다. 무시의 악순환이 사회 전체를 타자화하고, 소외의 그늘로 몰아넣고 있음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교회와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현상이 예외가 아니다. 이웃사랑을 외치지만 내부에서는 더 은밀하고도 세련된 방식으로 무시하는 역설이 존재한다. 계급화 서열화된 이미지를 세상도 이미 눈치채 버렸다. 일종의 ‘영적 안하무인’이다. 또한 경건과 거룩함을 핑계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보이는 ‘거룩한 무관심’도 존재한다. 분명 이처럼 멸시하는 모습들은 죄이다(잠 14:21). 예수 그리스도는 무시당하는 자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하셨다. 업신여기는 것은 ‘제자도’가 아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리는 관점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혹 무시를 당했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이겨내야 한다. 하나님의 시선만이 유효하다. 세상 평가 기준에 맞추려다간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관점에 기대어야 무례와 무시에 요동하지 않을 수 있다.

 타인을 대할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똑같다. 하나님의 관점이다. 나보다 못난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는 태도다(빌 2:3). 역지사지(易地思之)로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죽을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듭났다. ‘새 인격’으로 사는 것이니 마땅히 알맞은 말과 행동이 요구된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하셨으니(롬 12:10), 잘 따르면 될 일이다. 마귀가 좋아할 말과 행동을 하면서 어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나?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제111회기 총회를 앞두고 있다. 합동총회 후 처음 갖는 자리다. 한국 교회를 선도하는 총회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더 많이 산도 넘고 물도 건너야 할 것이다. 그때마다 서로 연합하고 함께하는 모습이 연출되길 바란다. 전혀 그럴 리가 없을 것이지만, 혹여 서로 무시하거나 피아(彼我)를 나누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일심동체(一心同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총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외모 성과 지상주의가 아닌 내면이 충실한 건강한 교단으로 인정받길 바라는 바이다. 하나님 나라 확장과 진전을 위한 바르고 거룩한 행보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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