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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르호봇 경제- 악시오스(ἀξίως)

김태구 장로 (칼빈대학교 교수, 세빛교회)

2026년 7월 19일

교육학자 리브스 박사의 저서 ‘동물학교’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동물들이 모여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달리기, 오르기, 날기, 수영 등의 교과목으로 커리큘럼을 작성하였습니다. 동물학교는 모든 동물이 똑같은 과목을 수강하게 했습니다. 오리는 선생님보다 수영을 잘했습니다. 날기도 그런대로 해냈습니다. 하지만 달리기는 낙제였습니다. 오리는 학교가 끝난 뒤에 달리기 과외를 받아야 했습니다. 다람쥐는 오르기에서 탁월한 성적을 냈지만 날기가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독수리는 날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솜씨였지만 다른 수업은 아예 참석하지도 않아 문제 학생으로 전락했습니다. 결국 수영을 잘하고, 달리기와 오르기, 날기는 약간 할 줄 알았던 뱀장어가 가장 높은 평균점수를 받아 학기 말에 졸업생 대표가 되었습니다.

 

동물학교의 우화는 평균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의 폐단을 얘기합니다.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을까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면 평균의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비난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는 모난 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모난 돌은 평균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모난 돌을 극단 값이라 칭합니다. 최근 우리가 경험하는 혁신은 평균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극단 값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Apple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한 뒤 차고에서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컴퓨터가 전문가만 사용하는 기계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누구나 쉽고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꿈꾸었습니다. 그의 비전은 결국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Amazon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안정적인 금융회사 부사장 자리를 내려놓고 인터넷 서점을 창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지만, 그는 미래의 가능성을 보았고, 오늘날 Amazon은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Tesla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던 시절에도 미래는 전기차에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파산 위기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NVIDIA의 공동 창업자 젠슨 황은 작은 회사에서 게임용 그래픽 칩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GPU가 미래의 인공지능 시대에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품었습니다. 그 통찰력은 오늘날 AI 혁명의 중심 기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물론, 극단 값을 선택한 Outlier(혁신가)는 엄청난 손실을 입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성공은 평균에 속하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입니다. 평균에 속한 사람들이 Outlier의 꿈에 열광을 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그 꿈을 소비합니다. Outlier가 거머쥔 부는 공짜가 아니라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대가입니다. 이를 등가교환의 원리라 부릅니다. 대단한 부는 이에 걸맞은 위험과 균형을 이루는 등가교환입니다. 평범한 부는 적당한 위험과의 등가교환입니다. 

 

이 등가교환의 원리로 예수님의 죽음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Outlier 중에서도 Outlier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예수님이 대속의 길을 위해 친히 화목 제물이 되는 비용을 지불하셨습니다. 그 비용에 대한 보상으로 예수님이 얻으신 것이 우리를 자녀로 삼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치르신 대가와 우리가 얻은 구원의 가치가 등가로 교환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가치만큼 우리가 받은 구원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인이 만 달란트의 빚을 포기하고 종을 탕감하는 것(마 18:27)과 흡사합니다.

 

이제는 등가교환의 원리로 바울의 권면을 들여다봅시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ἀξίως) 행하게 하려 함이라”(살전 2:12)

여기에 바울이 사용한 ‘합당하게'라는 말은 헬라어로 악시오스(ἀξίως)입니다. 이 단어는 저울의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저울 양쪽에 올려 둔 것이 무게가 같을 때만 균형을 이룹니다. 예를 들어 품꾼에게 품삯을 지불하고 일을 맡겼을 때, 품꾼은 품삯에 맞게 일하는 것이 악시오스입니다. 그렇게 하면 품삯과 품꾼의 수고가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기 위해 지불하신 피 값은 얼마일까요? 우리가 그 피 값과 균형을 맞추어 살 때에 비로소 악시오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올바른 상거래를 하는 것, 원수들을 긍휼함으로 대하는 것, 궁핍한 자를 돌보는 것 등 일상에서 겪는 모든 사건과 어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악시오스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극은 등가교환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방적인 손실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휩쓸리어 평균으로 살면 그러합니다. 세상의 평균은 여전히 두개의 저울추로 장사를 하고, 원가에 리베이트를 더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물건 값을 속여서 이웃의 재물을 빼앗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균은 일종의 피난처이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불의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갖고 사는 것이 세상에서 튀는 것이요 Outlier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기억하십니다. 그에게 천 대까지 하나님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성품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살아야 악시오스를 이룹니다.

 

악시오스는 우리 속에 살아 계신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가 맺는 의의 열매와 등가교환이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가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바울의 권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서 그 은혜를 알고 예수님을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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