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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배의 회복, ‘묵도’에서 ‘예배의 부르심’으로”

신영복 교수 (수도국제사이버신학 실천신학 교수)

2026년 7월 19일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주일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익숙한 인도자의 선언은 아마도 “다같이 묵도(默禱)하심으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일 것이다. 잔잔한 악기 반주가 흐르고, 온 회중이 눈을 감고 침묵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이 시간은 오랫동안 경건한 예배를 위한 필수적인 준비 과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매주 드리는 이 예배의 첫 순서가 과연 성경의 가르침에 철저히 기반하고 있으며, 개혁주의 신학의 ‘규정적 원리’ 즉 “예배는 인간의 고안이 아닌, 오직 성경에 명시되고 규정된 방식으로만 드려야 한다”는 원리에 부합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정통 개혁주의 실천신학은 예배의 본질을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간에 이루어지는 거룩한 ‘언약적 대화’로 정의한다. 이 영광스러운 대화의 주도권과 시작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즉, 참된 예배는 피조물인 인간이 스스로 마음을 비우는 침묵이나 내면의 명상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반응하고 응답함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 예배 순서에 깊이 고착화된 ‘묵도’라는 명칭과 예식은, 예배의 주도권이 마치 인간의 준비나 내면적 행위에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실천신학적 맹점을 지니고 있다. 이에 본 글에서는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묵도’에 숨겨진 신학적, 역사적 문제점을 짚어보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주도하시는 정통 개혁주의 예배의 참된 시작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묵도(默禱)의 역사적 유래

 한국 교회 주일 예배의 첫 순서로 자리 잡은 ‘묵도’는 본래 성경이나 정통 개혁주의 예식서(유럽 개혁교회 및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예배지침)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다수의 교회사학자와 예배학자들은 묵도의 기원을 일제강점기 시절 강요되었던 ‘동방요배’(東方遙拜)에서 찾고 있다. 동방요배란 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 궁성을 향해 고개를 숙여 절하는 묵념 의식이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의 모든 종교 집회 직전에 이 국가주의적 의식을 강요했다. 해방 이후 신사참배와 동방요배의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이 '침묵의 시간'이 예배 순서에서 완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형태만 바뀌어 ‘예배를 준비하는 침묵 기도’인 묵도로 둔갑하여 한국 교회의 예배 순서에 고착화된 것이다.

 

2. 실천신학적 문제점: 정통 개혁주의 관점

 ① 예배의 주도권 왜곡: 언약적 대화의 훼손

 정통 개혁주의는 예배를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백성 간의 ‘언약적 대화’로 본다. 이 거룩한 대화의 시작과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예배는 인간이 눈을 감고 마음을 수양하는 '침묵'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시는 '말씀'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적 준비가 예배를 여는 열쇠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②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위배

개혁주의 예배의 핵심 뼈대 중 하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은 성경에 명시되고 규정된 대로만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성경 어디에도 회중이 다 함께 눈을 감고 침묵함으로 예배를 시작하라는 지침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리어 성경의 예배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뻐 찬양하며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는 역동적인 행동이다.

 ③ 성경 구절의 주해적 오류

 묵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흔히 인용되는 성경 구절이 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합2:20) 그러나 개혁주의 성경 주해에 따르면, 여기서 요구하는 ‘잠잠함’은 명상을 위한 침묵이 아니다. 이 문맥은 앞서 언급된 '말하지 못하는 생명 없는 우상'(합2:19)과 대조되는, 영광스럽고 두려운 심판주 하나님의 임재 앞에 피조물이 마땅히 지녀야 할 압도적인 경외심과 절대적인 순종을 뜻한다. 이를 ‘예배 전 눈을 감고 명상하라’는 뜻으로 적용하는 것은 심각한 성경 오용이다. 따라서 눈을 뜨거나 감는 것도 아니며 다만 우리가 눈을 감는 것은 오직 성삼위 하나님 경외와 경배의 표현인 것이다.

 

3. 정통 개혁주의적 대안

 습관적인 묵도에서 이를 대체할 정통 개혁주의의 아름다운 예배 예식인 ‘예배의 부르심’과 ‘기원’을 제안한다.

 ① 예배의 부르심 (Call to Worship)

 예배의 진정한 시작은 인도자가 회중에게 묵도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주로 시편)을 크게 낭독함으로 선포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은혜의 자리로 부르신다는 사실, 즉 부름을 확인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 방식 A: 반주와 주악에 맞추어 시작 선포 후 성구 낭독 (반주가 흐르는 가운데 인도자 선포)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말씀입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편 100:1-2).

 ◈ 방식B: 성구 낭독으로 즉시 시작 (인도자가 강단에 서서 즉시 성구를 낭독하며 예배의 시작을 선언)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시편 124:8). 이 말씀에 의지하여 [oo]교회 주일 오전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② 기원(Invocation)

 예배의 부름 직후에는 목회자의 짧고 엄숙한 기도가 이어진다. 이를 기원 즉 ‘하나님을 청하여 부름’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의 공로나 준비가 아닌, 오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임재하심 만이 이 예배를 가능하게 함을 고백하는 정통 개혁주의의 핵심 예식이다.

 

 결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주도하시는 예배로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구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오셔서 만나주시는 은혜의 시간이다. 따라서 예배의 첫 문을 여는 것은 인간의 자발적인 침묵(묵도)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우리는 예배로 부르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제의 아픈 잔재이자 인간 중심적인 성격을 지닌 ‘묵도’를 과감히 성경적으로 개혁하여, 개혁주의 교회가 물려준 유산인 ‘예배의 부르심’과 ‘기원’으로 예배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칼빈(John Calvin)과 신실한 개혁자들이 그토록 사수하고자 했던 “오직 성경대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Soli Deo Gloria)” 드리는 참된 예배의 회복이다. 우리 교회가 이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예배 순서의 전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적 대화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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