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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선민의식은 특권이 아닌 책임

‘선민’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특권과 혜택을 누리는 소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민의식(選民意識)이라면 ‘엘리트 의식’을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의식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방향이면 좋겠지만,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듯이 배타적(排他的) 우월감(優越感)으로 변질되어 국가적 패망에 이른 것을 볼 수 있다. 현재도 이런 사례는 적지 않게 목도된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 동맹이 이란을 공습하며 전쟁이 발발한 이후 온 세계가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표면적으로 정권교체와 핵 저지 명분).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주변국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저항하였다. 유가(油價)와 자산시장(資產巿場)이 크게 출렁이며 환율이 요동치고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적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혹시 ‘가나안 정복’ 시대라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수많은 인명피해는 무엇으로 설명하려는가? 전투엔 이기고 전쟁엔 패할 수도 있다. 일시 휴전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고 다소 안도할 수 되었으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한 초기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믿었으며, 미 대륙을 ‘가나안’과 같은 ‘기회의 땅’이라고 굳게 믿었다. 초강대국 미국의 기틀을 마련한 그들은 철저한 선민의식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될 국가를 세우려 헌신하였다. 오늘날 복음의 진보에 크게 공헌한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선교지향성(宣敎指向性)으로 그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평가받는 북한에 비해 이란이 얼마나 위험해 공습했는지 모르겠다. 그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독실한 보수 기독교인으로 자타가 인정하기에 그렇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청교도 조상들이 언약 백성으로서 가졌던 ‘선민의식’과 진정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회복하라고 전하고 싶다.

미국의 존재 가치는 국제질서를 위해 수고하며 형성된 존경받는 ‘리더십’에 있다. 억압(抑壓)과 강제(強制)로는 지속 가능한 질서를 세울 수 없다. 역사상 성공한 적이 거의 없는 일방적인 관세정책(關稅政策)부터 시작해서 억지 투자 요청과 전쟁 등으로 가장 큰 자산인 ‘신뢰(信賴)와 존경(尊敬)’을 잃어버렸다. 도덕성도 실추(失墜)하였다. 협박도 한두 번일 때 통한다. 반복되면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말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지금 딱 그 형국이다. 조한범 박사(통일연구원)는 강대국이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다극화(多極化) 시대를 지나 각자도생(各自圖生) 무극화(無極化) 시대로 향하고 있다며 국가적 생존 전략을 모색하자고 주장한다(『무극화시대: 대한민국 생존시나리오』). 새 질서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UN마저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상당 기간 패권국의 위치를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형식적인 외양(外樣)만 남을 수도 있다. 성경은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의 멸망을 교만함이라 말하고 있다.

모름지기 기독교인은 선민이기에 선민의식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은 배타적인 이기주의(利己主義)가 아니다. 이타적인 희생(犧牲)과 헌신(獻身)이다. 예수님은 자리다툼을 하는 제자들에게 ‘희생과 섬김’을 명하셨다(마 20:20~28). 진정한 제자도(弟子道) 실천을 당부하신 것이다.

어디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십자가를 지셨을까? 기독교인은 철저하게 ‘진짜답게’ 살아야 한다. 유명무실(有名無實)해선 안 된다. 몇 해 전 광화문 집회에서 “목사님 제발 예수님 믿으세요.”라는 피켓이 등장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모두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2024년 3월부터 4월까지 tvN에서 16부작으로 방영된 “눈물의 여왕”(김수현·김지원 주연)에서 백현우(김수현 분)의 아버지 백두관(전배수 분)이 한 말이 생각난다. “말이 안 통해서 전쟁이 나는 겨!” 힘이 있다고 무력으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주님을 따라 ‘희생과 섬김’으로 공헌하고 주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한다.

우리 총회가 최근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와 복음의 능력에 기대어 감당해야 한다.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변화를 꾀해야 한다. 자신이 변화되고 사랑하는 이들이 변화되어 주님 은혜를 누리길 소망해야 한다.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주님이 ‘옷’을 입히셨다. 그 몫을 능히 잘 해냄은 복 있는 선민의 모습이다. 과연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를 위해 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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