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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염치와 몰염치

2026년 2월 8일

‘염치’(廉恥)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몰염치’(沒廉恥)는 반대로 부끄러움을 상실한 상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염치를 모르는 이들로 넘쳐난다. 남의 권리를 침해하고도 당당하며, 죄를 짓고도 뻔뻔하다. 영향력이 큰 자들일수록

더 노골적이다. 이들의 범죄엔 범부필부(凡夫匹夫)라면 상상하지 못할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된다.

그래서일까. 누가 들어도 뻔한 거짓말이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선동은 일상이 되었다. 귀스타프 르봉(Gustave Le Bon, 1841~1931년)을 굳이 소환하지 않더라도, 오래전부터 같은 방식으로 군중심리에 휘둘려 왔음을 알 수 있다. SNS의 발달은 이를 더 가속하였다. 거짓도 반복하면 사실이 되고 마는데, 나치의 선전 장관 괴벨스(Paul J. Goebbels, 1897~1945)는 이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활용했다.

그러나 몰염치한 군상들이 넘친다고 해서 교회와 성도까지 그래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수록 교회는 염치를 회복해야 한다. 염치를 아는 것이 곧 시작이다. 단순한 체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전적인 타락(Total Depravity)을 깨닫는 ‘거룩한 부끄러움’이다.

영적 파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 하나님은 ‘비참하고 볼품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양심 위에 역사하신다. 염치를 아는 인생이 하나님 은혜로 회심(Conversion)에 이르고, 그 결과 새로운 신앙 인격으로 빚어져 새로운 자아로 살아간다. 모든 게 그리스도의 공로임을 알기에 오만할 수 없다.

회심한 영혼은 필연적으로 성화(Sanctification)를 추구한다.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을 닮아간다. 작은 순종이 거듭되며 영적인 근력이 강화되고 가속도가 붙어 체질화된다. 마땅히 겸손(Humility)도 뒤따른다.

겸손은 애써 낮추는 기술이 아니라, 은혜가 만들어 내는 결과다. 주님으로 채워진 이는 겸손을 과시할 이유가 없다. 매일 자신을 쳐 복종시키고 주님을 따르니, 그 자리에 늘 주님이 함께하신다.

크게 성공한 이들 중에도 지극히 겸손한 이가 있고, 반대로 초라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한 자가 있다. 겸손하지 않음은 하나님 은혜를 거부하는 태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하나님 앞에 몰염치할 수 있겠는가. 끝까지 교만을 놓지 못하면 가짜임을 증명하

는 꼴이다.

세상과 달리 교회의 성공은 인간 ‘의지’로 쌓아가는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열매다. 은혜로 겸손히 감당하는 청지기 사명, 이게 진정한 번영이며 부흥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신실해 보이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이 빈번하다. 마치 기업의 CEO처럼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하려 한다. 염치를 모르는 심각한 교만이며 하나님의 자리에 스스로 앉는 행위다. 어느 순간 방종이 틈타고, 유혹에 넘어가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날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염치가 있었고, 사울은 몰염치하였다. 사울은 심히 교만해 자기 판단을 절대화하였다. 다윗은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섰다. 염치를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부복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그의 능력이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알아야 올바른 행실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청교도들은 교육에 목숨을 걸었다. 성령의 유효한 역사를 바라며 염치가 있는 인생으로 빚는 일이었다. 교회 안에 아무리 오래 머물렀어도 주님 밖에서 살아왔다면 여전히 몰염치한 자이다. 유리한 대로 판단해 말하고 행동한다. 반면에 남의 허물은 과도히 들추어낸다. 심지어 성경도 아전인수로 해석하며 멋대로 적용한다. 과도한 종교적 확신이 낳은 왜곡된 신앙이다. 말씀을 인용하지만, 정작 말씀 앞에 서지는 않는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2:13)


그러므로 바르고 온전한 신학과 교리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염치는 곧 ‘코람데오’(Coram Deo)이다.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된 신학과 교리는 피해야 한다. ‘성장주의’와 ‘부흥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프로그램 시스템을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나, 먼저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바른 교육에 매진해 보자.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를 비롯한 교단 내 신학교들이 사명을 다하도록 힘이 실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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