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구 장로 (칼빈대학교 교수‧세빛교회)
2026년 2월 8일
Cherry Picker는 원래 Cherry를 따는 지게차 같은 것을 지칭하는 단어였습니다. 그 말의 의미가 변하여 오늘날에는 자신의 실속을 추구하면서 정작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현명한 소비를 추구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현명한 소비자는 케익의 한 가운데 놓여진 가장 맛있는 체리를 빼먹는 Cherry Picker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Cherry Picker의 모습은 일상 속 다양한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형 마트가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 고 내놓은 미끼 상품만 구매하고 곧장 계산대로 향하는 특가 사냥꾼이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의 무료 배송과 반품 정책을 이용해 옷을 주문한 뒤 행사에서 한 번 입고는 반품해 버리는 반품족이 있습니다.
신용카드 회사가 제공하는 보너스 혜택은 다 챙기고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메뚜기족이 있습니다.
성경에 ‘구주’, ‘구세주’라는 단어가 36번, ‘주’, ‘주님’이라는 단어는 7,800번(주2) 언급되어 있습니다. ‘구주(Messiah)’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하신 일을 나타냅니다. ‘주(Master)’는 예수님이 우리의 삶 속에 차지하는 위치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자 주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그 분은 우리 안에 주인으로 들어오십니다. 구주이신 예수님과 주인
이신 예수님이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것은 신앙생활의 첫 시작에 불과 합니다. 이후의 신앙생활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주이신 예수님만 붙잡고 주인이신 예수님을 저버리고 살아간다면 이 역시 Cherry Picker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광야 1세대 앞에 서서 얘기합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거듭 당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여호와를 사랑하되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다윗 역시 마음의 중심에 주의 법을 두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법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되 뜻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뜻을 다한다는 것을 목숨을 내놓는 것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목숨을 버리기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목숨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되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힘을 다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복(바라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놓치면 필히 멸망하고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 날이 왔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이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모여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는 삶의 주도권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분에게 우리의 삶의 운전대를 양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종된 청지기입니다. 큰 재물을 위임받아도 완악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가지 않아야 합니다. 방탕함과 술취함으로 마음이 둔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못된 나무가 노력한다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좋은 열매는 좋은 나무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자가 좋은 나무입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쓴 빌립보 서신을 통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우리의 과업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만나는 Event부터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의 전 Process를 관통합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죄 값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웠기 때문입니다.(골 1:22)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데 예수님을 구주로만 붙잡고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 입니다. 이것이 바로 Cherry Picker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로 받았으나 사는 것은 하나님과 무관합니다. Cherry Picker는 구원과 삶을 나눕니다. 종 되었던 애굽에서 해방 된 기쁨을 갖고 바알 신당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가능합니다.
왜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순전히 구원에 대한 오해가 원인입니다. 구원을 Event로만 보면 필히 Cherry Picker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얘기합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받고 언약의 백성이 됩니다. 이것이 레위기입니다. 민수기는 언약의 백성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훈련의 삶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훈련받은 광야 후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룩한 성민으로 사는 것이 여호수아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죄의 종 노릇을 합니다. 죄는 끊임없이 육신의 사욕을 쫓아 살도록 우리를 종용합니다.(롬 6:6~14)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B. Ferguson)이 ‘성도의 삶’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죄의 종 노릇을 하기 않게 되었다고 해서 죄와의 싸움도 끝났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지만 우리 안에 죄는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카톨릭의 타락과 부패에 의해 촉발된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과연 누가 주인인가’, ‘과연 누가 기준인가’에 대한 싸움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교황이 기준이 아니고 하나님이 변함 없는 기준이요,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면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 종교개혁입니 다.
프랑스에서도 종교개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Lordship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로 불리운 위그노였습니다.
당시 위그노는 섬유, 방직, 기계 등 각 분야에서 숙련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40여 만 명의 위그노들이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으로 탈출하였습니다. 영국으로 망명한 위그노는 증기기관의 기술과 면방직 공업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미국에 건너간 위그노(청교도)는 서부개척을 해냈고 미국의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위그노는 구주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붙잡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빵을 만들어도 주인이신 예수님께 드리는 빵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하는 것이 위그노 정신이었습니다. 위그노는 작고 큰 문제가 닥치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풍요를 만들어 냈지만 사치와 향락을 일삼지 않았습니다. 위그노는 철저하게 Cherry Picker를 배격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 자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의 종으로서 마땅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롬8:17)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선한 행위(엡6:8), 우리 자신을 부인했던 삶(마16:24~27),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베푼 것(눅14:13~14), 심지어 원수에게 친절하게 대한 것(눅6:35) 등에 대하여 보상하십니다. 그러나 Cherry Picker는 이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존 번연이 이런 말을 합니다. 주인을 위해 행한 좋은 일은 하늘나라 금고에 보관되었다가 우리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때 사람들과 천사들앞에서 상급이 되어 나아 올 것입니다. Cherry Picker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자의 영원한 가치를 놓치게 됩니다. 우리가 Cherry Picker의 길에서 떠나 하나님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한 자들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0~12)
(주1)르호봇경제는 예수님을 Master(행 2:36)로 붙잡는 삶이요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의미합니다.
(주2)이 내용은 존비비어(John Bevere)의 Good or God?을 인용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