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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경적 언어 세계관(8)

2026년 2월 8일

헬라·라틴 언어관의 변질과 신학의 왜곡(2)



6. 언약적 존재론이 제시하는 대안

[발화(utterance, “ רָבָּד dābār, 하나님의 말씀이 존재를 일으킨다.”) 중심 존재론의 회복]


개혁파 스콜라의 전통은 종교개혁이 남긴 신앙의 질서를 보존하려는 의도를 가졌으나, 그 과정에서 신학 언어가 ‘관계적 발화’의 리듬을 잃어버리기 쉬운 구조를 형성하였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말씀으로 일어나고(창1:3), 말씀으로 유지되며(히1:3), 말씀으로 다시 세워진다(행20:32)”는 성경의 기본 감각이, 점차 ‘정의·분류·논증’의 체계 속에서 ‘설명 가능한 내용’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 결과 신학은 살아 움직이는 언약 사건을 다루기보다, 사건을 설명하는 명제의 목록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때 가장 큰 손실은 “말씀은 본래 들음으로 사람을 세우는데, 언어가 개념화되면 ‘듣는 신앙’이 약화 되고, 듣기보다 ‘판정’ 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로마서가 말하는 믿음의 길—“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가 실제 신앙의 중심 리듬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머리로 이해하는 문제나, 체계의 일관성을 점검하는 문제로 축소될 위험이 커진다.

창세기 3장 6절 “눈이 밝아져”, 이후 인간의 방향성은 ‘듣는 존재’에서 ‘보는 존재’로 기울어졌고, 스콜라적 틀에서는 이 기울어짐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하면서, 교회는 더욱 ‘보는 신앙’의 형태로 굳어졌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은 성경·인간·하나님·역사 전체를 다시 ‘발화 중심’으로 재정렬하여, 말씀을 단지 해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말씀에 의해 존재가 세워지는 구조를 회복하려고 패러다임 전환을 전개한다. 이 전환은 적어도 여섯 개의 핵심 영역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하나님은 ‘결정자’가 아니라 ‘발화자로’ 회복된다

스콜라주의는 하나님을 ‘영원한 법적 결정자’로 이해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는 분, 즉 존재를 일으키는 발화자로 등장한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창1:3)


언약적 존재론은 이 구조를 다시 중심에 둔다. 작정은 “결정 목록”이 아니라 “발화 사건”이다. 하나님의 영원은 시간 앞의 상태가 아니라, 말씀이 끊임없이 현재를 생성하는 발화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논리적 체계의 근거가 아니라, 관계적 발화로 존재를 부르시는 인격적 주체다. 이 회복은 예정론뿐 아니라 하나님 개념 전체를 새롭게 한다.


두 번째, 말씀은 ‘교리 명제’가 아니라 ‘존재 생성 사건’으로 회복된다

스콜라 신학이 말씀을 개념적 명제로 환원했다면, ‘히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은 말을 다시 사건, 현현, 존재 생성력으로 회복한다. 히브리어 dābār가 언제나 “말–사건–형성”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히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에서 말씀은 “비가시적 영역에서, 관계적 발화를 통해, 존재를 생성하고, 인간 안에서 다시 발화되어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말씀은 단순한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를 빚는 인식적·존재론적 발화이다.


셋째, 인간은 ‘논리적 피선택자’가 아니라 ‘응답적 존재’로 회복된다

스콜라적 틀에서는 인간이 ‘선택/유기’의 분류 대상처럼 다루어지기 쉽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내면은 ‘결정이 적용되는 객체’로 보이고, 신앙은 그 결정의 결과를 추론하거나 확인하는 방식으로 변질된다.

반면 ‘히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은 인간을 “하나님의 발화를 수용하고, 생성된 정체성으로 응답하는 존재”로 정의한다. 인간은 단순히 판단하는 의지의 주체가 아니라, 말씀에 의해 정체가 형성되고 그 정체의 발화로 살아가는 응답적 존재다.

이 관점은 신앙의 무게중심을 바꾼다. 신앙은 먼저 내가 결심하여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를 세우시고 그 세워짐 속에서 내가 듣고 반응하는 관계이다. 따라서 ‘순종’도 외부 명령을 억지로 수행하는 행동주의가 아니라, 내 안에서 들리는 말씀의 방향을 따라 자연스럽게 정렬되는 응답이 된다. ‘안에서 밖으로’라는 질서가 여기에서 나온다.

또한 ‘자아’에 대한 이해도 바뀐다. 인간은 ‘중립적 자아’가 아니라,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정체가 형성되는 존재다. 창세기 3장의 타락은 단지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듣는 구조’가 깨지고 ‘보는 구조’가 지배하는 방향 전환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말씀을 들어도 쉽게 자기 판단의 재료로만 쓰게 된다. 히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은 이 문제를 ‘의지의 약함’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존재론적 구조의 변형으로 파악한다.

이 구조를 인정하면, 죄의 문제도 단지 ‘나쁜 행동’이 아니라 ‘발화 질서의 왜곡’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죄는 하나님 말씀을 떠난 자가 자기 자신을 발화하는 자리(자기 발화)로 굳어지는 것이며, 그 결과 존재는 무로 향하는 경향성을 강화한다. 반대로 복음은 그 자기 발화를 해체하고, 하나님 발화로 다시 서게 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인간론의 회복은 곧 복음 이해의 심화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교회 교육과 목회는 ‘행동을 고치라’는 외적 지시를 늘리는 방향으로만 가서는 안 된다. 먼저 성도가 “나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를 분별하게 하고, 복음의 발화가 내면에서 작동하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그때 윤리와 열매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가 되며, 신앙은 죄책의 반복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리듬으로 살아난다.


넷째, 성령은 ‘이성의 보조자’가 아니라 ‘발화의 내면화 주체’로 회복된다

스콜라주의는 성령을 종종 ‘진리를 이해하도록 돕는 지성의 조력자’로 축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성령의 사역은 설명될 수 있는 개념을 ‘더 분명히 이해하게 하는 도움’ 정도로 오해되기 쉬웠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단지 이해의 증대가 아니라, 사람이 새로워지는 사건이다. 그래서 ‘히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은 성령을 ‘발화의 내면화 주체’로 위치시킨다. 성령은 하나님의 발화를 인간의 비가시적 영역에 심으시는 분이며, 복음 정보를 존재로 변환시키는 내면적 발화의 주체이다. 또한 정체성을 구성하고, 거짓 정보를 해체하는 존재 형성의 인격적 사역자이시다. 즉 성령은 단지 ‘확신을 주는 분’이 아니라, 말씀을 내면에서 다시 발화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때 인간은 교리를 이해하는 자로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발화를 내면에서 다시 말하는 존재로 서게 된다.

이 지점에서 ‘외적 복음’과 ‘내적 복음’의 구분이 정리된다. 외적 복음은 역사 속에서 아들께서 완성하신 복음의 발화이며, 내적 복음은 성령께서 그 동일한 복음을 인간 안에 다시 말해 주시는 재발화이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기원은 다르다. 이 구조를 붙들면, 신앙은 ‘내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복음을 내 안에서 다시 말하게 하시는 것’이 된다.

여기서 ‘듣는 신앙’은 단지 태도가 아니다. 성령이 내면에서 복음을 말하게 하실 때, 사람은 이전에 들을 수 없던 것을 듣기 시작한다. 즉, 말씀이 내 안에서 ‘가르침’이 아니라 ‘발화’로 울리는 순간, 회개와 확신과 순종은 서로 다른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 리듬으로 연결된다.

목회 현장에서 성령을 ‘감정적 흥분’이나 ‘설명되지 않는 체험’으로만 오해하면, 성령론은 내면주의로 흐른다. 반대로 성령을 ‘이해를 돕는 기능’으로만 축소하면, 성령론은 지성주의로 굳는다. ‘히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은 성령을 ‘말씀이 내 안에서 다시 들리게 하시는 인격적 주체’로 회복함으로써, 듣는 신앙의 길을 실제로 열어 준다.


다섯째, 언약은 ‘계약’이 아니라 ‘관계적 발화의 장’으로 회복된다

언약을 ‘계약’으로만 이해하면, 조건과 조항의 체계가 된다. 물론 성경에는 명령과 약속이 있다. 그러나 언약의 핵심은 조항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관계를 여시고 그 관계를 유지하시는 방식이다. 히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은 “언약은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발화의 지속”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미래에 무엇을 하겠다’는 시간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도 말씀하심으로 관계가 서고 존재가 붙들리는 현실을 가리킨다.

여기서 ‘시간을 제거한다’는 표현은, 역사를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의 흐름에 ‘매여’ 사라지는 말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선포되었지만 지금도 동일하게 들려 존재를 세우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언약은 과거의 문서가 아니라, ‘영원한 현재’로서 들리는 하나님의 발화이며, 그 발화가 관계를 계속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언약을 이해할 때 핵심은 “언제 이루어지느냐” 만이 아니라, “지금 나를 붙드시는 말씀이 무엇이냐”이다.

따라서 언약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말이 아니다. 말씀이 사람 안에 들어와 그 사람을 살리고, 정체를 세우고, 삶의 방향을 정렬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이 의미에서 ‘언어인 정보가 존재를 드러내게 한다’ 는 말은, 말이 존재를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관계의 실재를 만들고 유지한다는 뜻이다. 언약은 ‘시간이 개입된 약속’이면서도, 그 약속을 지금-여기에서 성취로 이끄는 ‘현재적 붙드심’이기도 하다.

예레미야 31장 33절은 이 구조를 가장 직접적으로 말한다. 하나님은 언약을 돌판 바깥에만 두지 않고 마음에 새기신다.

곧 언약은 외적 명령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말씀을 심어 그 말씀이 나를 이끌게 하시는 사건이다(렘 31:33).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는 혈통이나 제도의 소속이 아니라, 내면에 심긴 언약의 말씀이 내 안에서 다시 말해지는 곳에서 분명해진다.

결국 언약은 존재를 빚고, 존재는 발화에 응답하며, 그 응답 안에서 하나님을 드러낸다. 이 상호성은 계약의 교환이 아니라, 관계의 생명이다. 이 지점에서 언약은 법정 언어를 넘어 ‘살아 있는 언어’로 회복되며, 듣는 신앙은 그 언약의 작동 방식 자체로 정의된다.


여섯째, 창조–언약–구속–종말 전체가 발화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대전환

언약적 존재론은 발화 개념을 신학 전체의 구조 원리로 삼는다.

창조: 창조적 발화 (“빛이 있으라”)

언약: 관계적 발화 (“너는 내 백성이라”)

중생: 내면적 발화 (“심기어진 복음의 재발화”)

성화: 발화적 정체성의 확장

영광: 영원적 발화의 완료 (“하나님이 만유 안에 모든 것이 되시는 상태”)

이 구조는 스콜라주의가 잃어버린 말씀–존재–관계의 전체적 리듬을 복원한다. 결론적으로 하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이 제시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결정 중심 신학에서 발화 중심 신학으로 돌아가라.” 이는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히브리 성경 전체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말씀–존재–관계 구조”를 회복하는 것이다. “히브리적 언약적 존재론은 칼빈이 시작했으나 스콜라주의가 잃어버린 언약의 실재성, 말씀의 사건성, 성령의 내재성, 인간의 응답성을 다시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다음 호 : 칼빈의 “기독교 강요” 1559년 판 3권 21~24장의 삽입 의미)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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