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목사 (수도국제사이버신학 실천신학 교수)
2026년 2월 8일

최근 우리 주변에서 ‘기름부음’(Anointing)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무분별하게 오남용되는 신학 용어도 드물다. 집회 현장에서는 특정 사역자의 안수를 통해 전이(Impartation되는 ‘신비한 에너지’로 취급되기도 하고, 때로는 목회자의 비성경적인 독단을 정당화하는 ‘권위의 방패’로 오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성령 하나님을 인격적인 분이 아닌 비인격적인 힘(Force)으로 격하시키며, 성경이 말하는 참된 은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정통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기름부음은 결코 개인의 주관적인 황홀경이나 독점적인 특권이 아니다. 기름부음을 뜻하는 히브리어 ‘마샤흐’( חַׁשָמ )와 헬라어 ‘크리오’(χρίω)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공적 직분으로의 구별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신약의 성도가 누리는 기름 부음은 ‘기름부음 받은 자’이신 그리스도와 연합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선물이다. 이에 본 글에서는 기름부음이라는 용어의 원래 의미와 성경적 본질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아울러 현대 교회 내에 침투한 미신적·교권주의적 오남용 실태를 개혁주의적 시각으로 진단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성도가 회복해야 할 참된 기름부음의 사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 원어의 의미와 구약의 배경
성경에서 ‘기름부음’은 결코 막연한 비유가 아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마샤흐( חַׁשָמ )’는 ‘바르다’ 혹은 ‘액체를 붓다’라는 물리적 행위를 뜻하지만, 신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중에서 특정 인물을 선택하여 거룩하게 구별하셨음을 공포하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세 가지 공적 직분, 즉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시행되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출30:30)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기름부음의 목적이다. 기름 자체가 어떤 신비한 효험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기름이 부어짐으로
써 그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수종 들어야 하는 공적 직분자(Public Officer)가 되었음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약적 전통은 신약에 이르러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 곧 기름 부음 받은 자이신 예수 그 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성취된다. 헬라어 동사 ‘크리오’(χρίω)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인류의 참된 왕이자 제사장, 선지자로서의 삼중직을 완수하셨음을 보여준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기름부음의 본질은 개인의 주관적 만족이나 신비한 능력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께 소속되어 그분의 뜻을 받드는 '직분적 사명'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이 용어를 개인의 영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기름부음이 가진 하나님의 구원의 귀한 계획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 한국 교회와 집회 현장에서 사용되는 ‘기름부음’
오늘날 한국 교회 내에서 ‘기름부음’(Anointing)이라는 용어는 성령의 인격적 사역보다 주술적 힘이나 사역자의 권위를 세우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집회의 사역자들은 자신들이 마치 ‘기름부음’을 주거나 전달하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기름부음이 과연 특정 사역자의 전문 용어인가? 전유물인가? 뜻을 알고 사용하는가?
◈ 기름부음의 기독론적 본질
그리스도, 기름 부음 받은 자는 '그리스도'라는 호칭 자체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 따라서 성도의 기름부음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2문: 왜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까? 답: 내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 부으심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이다. 따라서 기름부음은 사람이 하는 행위가 아니다.
◈ 기름부음의 현대 오남용에 대한 개혁주의 입장
지금 기름부음은 비인격적 에너지 로 변질되었다. 안수를 통한 '임파테이션(Impartation, 전이)'은 성령의 주권을 침해하는 인위적 행위임을 지적한다. 성령은 조종할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라 주권적인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교권주의의 도구로 사용하는 "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 말라"는 구절의 오용(Misuse)을 지적한다. 이는 만인제사장직을 훼손하고 목회자를 신격화하는 오류이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Logos) 없는 체험을 감정적 고양이나 신비한 현상을 기름부음으로 착각하는 신비주의를 경계하고 개혁주의의 핵심 원리인 ‘말씀과 성령의 일치’를 강조해야 한다.
◈ 결론: ‘기름부음’의 본질의 회복
‘기름부음’ 이는 사람이 마음대로 조정하듯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기름부음’이라는 용어를 자기 권위를 세우는 도구로 쓰지 않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기름부음’은 사역자가 남보다 특별하다는 것을 뽐내는 계급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 하겠다는 겸손한 약속인 것이다. 진정한 기름부음의 증거는 집회 현장의 뜨거운 열기나 쓰러지는 현상에 있 지 않다. 이제 우리는 ‘기름부음’을 미신과 열광주의의 늪에서 건져내어, 말씀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일상의 순종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목회자가 먼저 “기름부음 받은 자”이신 그리스도 앞에 온전히 복종할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을 치유하는 참된 생명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라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
으로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
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