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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리송해

2025년 12월 27일

부친이 남긴 많은 빚과 유방암 투병, 쿠싱 증후군으로 고생하던 가수 이은하 씨가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수많은 히트곡 중 ‘아리송해’(1979)라는 곡이 생각났다.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 한 너의 말이 아리송해 ……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터무니없는 말이 아리송해·……” 대략 이렇다. 유쾌한 가사와 경쾌한 리듬과 율동으로 크게 유행했다.

학창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앞뒤 안 맞는 터무니 없는 말 말라니 꼭 내게 하는 말 같다. 바르고 분명한 말과 행동이 요구되는 때가 아닌가 싶다.

한국 교회가 큰 위기와 혼란을 겪고 있는데, 단순한 환경의 변화나 어떤 외압 때문만이 아니다. 성경 해석과 적용의 잘못이 큰 이유가 아닐지 싶다. 이로써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왜곡되고 약화 일로다. 다들 성경을 인용하며 ‘성경적’이라는 말을 반복하는데, 정

작 하나님을 보좌에서 밀어내고 인간이 그 자리에서 좌지우지하는 ‘인본주의 신학과 신앙’이 범람하며 점점 고착되는 경향이다. 물론 건강한 교회도 많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성경적’이란 말이 단순히 성경구절을 언급하는 게 아님은 쉬 짐작할 수 있다. 성경해석과 적용은 반드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토대 위에 놓여야 한다. 하나님의 관점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성경적이라고 말해도 ‘하나님이심을 훼손하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단 사이비라도 얼마든지 성경적이라 주장하며 자신들을 합리화할 수 있다. 실제로 교회사 속 거의 모든 이단은 ‘성경적’이라 주장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성과 지성이 우선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욕망의 도구

로 전락한 사례가 빈번했다.

여러 요소가 있겠으나 오늘날 복음주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을 조금만 말하려 한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은 어떻게 살아도 된다는 값 싼 은혜의 구실이 되었는데, 이는 웨스트민스터 채플을 담임한 R.T. 켄달 신학의 요체다. 그는 성경을 능

숙하게 사용하는데, 실상은 ‘하이퍼 칼빈주의’와 ‘극단적 알미니안주의’를 절묘하게 섞은 것이다. 동과 서처럼 도무지 만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전자는 하나님 절대주권 강화지만, 실제는 인간 중심 사고에 불과하다. 후자는 구원의 결정을 인간이 하는 게 되고 말았다. 좌우 경계에서 선구자가 되고자 했던 켄달은 이 둘을 조합해 결과적으로 ‘쉽게 믿고, 맘대로 살아도 된다’는 혁신적 교리를 창안하고 말았다. 혼합주의 산물이라 할 텐데, 그간 물의를 일으켜 이단으로 정죄된 류광수 신학도 그러하다.

합동한 우리 총회를 신중하게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히 여길 일이 아니다.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아리송한 모습’은 곤란하다. 뺄 것은 다 빼고, 개혁 신학과 신앙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려야 한다.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생산해야 한다. 개혁신학과 신앙은 하나님 절대 주권을 근간으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 책임의 균형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데, 이는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Synergism)이 아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찾고 구할 때 주시는 은혜로 인간이 자유로운 의지를 써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전인격적 책임을 다하라는 말이다.

얼마 전 거대 두 교단의 통합 소식이 교계를 강타하였다. 교단과 교파와 신학의 경계가 무색한 시대이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우리 노선은 분명해야 한다.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으로 더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하겠다. 화합과 연합을 도모해야 한다. 기다리며 서로 보듬어 주는 넉넉한 아량도 필요하다. 화려한 구호나 정책적인 이벤트는 별로다.

몸소 내보이는 삶과 신앙의 실천이 최상의 비책이지 싶다. ‘마귀의 초대장’에도 말씀이 있음을 주의하자(마 4:1-11).

‘아리송한 가르침’은 결국 ‘값싼 복음의 은혜’, ‘스스로 선택해 결정하는 구원’, ‘마음대로 살아도 그만’인 교회와 교인을 양산한다. 진짜 부흥은 교회 안에 참된 회심자가 증가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이번에 내친김에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에 입학 또는 재입학 운동이라도 일어나면 좋겠다. 바르고 분명한 정체성을 점검하고 확립하여 이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녕 우리에게 큰 기회가 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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