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삼 목사 (엘림교회)
2025년 7월 13일

서론
오늘날 한국교회에 나타난 심각한 교리적, 도덕적 문제는 교회가 권징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특히 목회자에 대한 징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음으로써 동료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받는 상처는 대단히 크고 심각하다. 특히 많이 알려진 지도자들의 성 비위나 금전적인 비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밝혀졌어도 교회가 합당한 벌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통합측 총회를 쓰나미처럼 휩쓸었던 당시 총회장의 불륜의혹은 해가 지나도 잠잠하지 않고 계속해서 교계를 강타하고 있다. 전 총회장의 불륜 의혹을 재판하지 않기로 한 총회 재판국(방운술 국장) 결정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교회개혁평신도행동연대와 명성교회평신도연합회 등은 2025년 2월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의식 목사에게 면죄부를 준 총회 재판국과 재판국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예장통합 총회와 재판국에 사망 선고를 한다며, 장례를 치른다는 뜻으로 기자회견 시작 전 장송곡을 틀고 상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을 진행했으며 총회 재판국은 면죄국이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런 예는 통합총회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본 총회에 속했던 대부분의 목회자가 가입되었던 세계복음화전도협회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지도자의 성비위 문제가 매스컴을 타고 퍼져나갔다. 이러한 문제는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야기되었던 문제였다. 그리고 지도자 그룹에 속한 중대형교회의 목사들의 성비위는 매우 심각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인천의 K목사는 경인노회에서 면직되었고, 고등법원에서 1년 반의 징역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그리고 대구의 C목사, 부산의 O목사, 분당의 H목사 역시 이런 문제가 야기되어 교회를 사임하였으나 노회를 탈퇴하는 것으로 징계도 없이 마무리가 되었는데, 대구의 C목사, 분당의 H목사는 전 교회 성도들 중 지지자들을 모아 교회를 개척하였고, 다시 같은 총회의 다른 노회에 가입하여 정회원으로 행사하고 있으며, 부산의 O목사는 가까운 곳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노회에서 치리를 받지 않고 다시 목회를 하고, 같은 총회 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 것은 어떤 지도자의 묵인이나 비호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런 예를 모두 다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어느 지도자는 전도사의 강간미수에 대하여 그것을 덮어주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교회가 크게 발전했다는 말을 설교시간에 수차에 걸쳐서 반복한바 있다. 덮어주었으면 그것으로 조용히 끝나야지 계속해서 그것을 성도들에게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합측 교회개혁평신도행동연대 대표 정태윤 집사는 “총회 재판국은 간음 증거 동영상과 김의식 목사의 자백 녹취 파일을 외면한 채, ‘증거가 불충분해 기소하지 않겠다.’는 결정으로 김 목사에게 면죄부를 줬다. 김영걸 총회장, 방운술 재판국장을 비롯해 총회 재판국원 7명에게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고 면죄부를 준 죄를 물어 심정적 사형선고를 내린다”고 말했다. 평신도들이 이렇게 비판하고 나서고 있는데 목회자들은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개혁교회는 참된 교회의 표지로서 말씀의 진정성 있는 전파와 성례의 정당한 거행과 함께 권징이 신실하게 시행되는 것을 들고 있다. 이에 교회의 표지로서 권징을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본론>
1. 교회의 세 가지 표지(標識) 중 하나로서의 권징
권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교회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참된 교회가 아니다. 세상에는 수다한 교파가 있고, 많은 교회들이 있다. 이 교회들 가운데 참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하는 문제가 일어난다. 따라서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표지 문제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박형룡 박사는 “종교개혁자들은 강조하기를 참된 교회는 대다수가 문제를 결정하는 듯이 그것의 크기나 사람 수에 의해 구별되기 불능하다. 구약과 신약의 전교회 역사는 큰 교회라는 관념을 정죄한다. 구약 백성의 역사에는 통상으로 육체적 이스라엘의 대다수를 구성하였고, 참 교회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이라는 은혜로 선택받은 적은 수에 의해 대표되었다. 신약의 교회도 그렇다. 교회가 세계에서 자라서 커지고 왕성함에 따라 통상으로 배교하며 부패하여지고 참된 교회는 흔히 육체와 세상의 표준에 따라 약하고 멸시받는 소수로 된다. 공식적 유대인의 공회는 선지자들을 핍박하며 죽였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교회의 오랜 역사가 그것의 진정성을 표시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가 여러 세기의 긴 역사를 자랑하되 부패하여 정통신앙에서 떠나고 새로이 일어난 교회가 사도적 신앙의 참 교회의 구별되는 표식들로 이바지할 수 없다고 개혁자들은 보았다”고 참된 교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참된 교회의 표지로서 복음의 순수한 교리적 전파만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칼빈은 두 가지 표지를 말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진지하게 전해지고, 그리고 그것이 들려지는 곳, 또 성례전이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그대로 집행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혹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 가운데 내가 있다’는 그리스도의 약속(마 18:20)은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칼빈이 말한 두 가지 표지에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라는 제3의 표지를 추가하였다. 칼빈 역시 권징의 필요를 역설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의 교리가 교회의 영혼인 것과 마찬가지로 징계는 교회의 건(腱, 힘줄)에 해당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몸의 각 지체는 각각의 위치를 지켜서 서로 결합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박형룡 박사는 말씀의 진정한 전파, 성례의 정당한 거행, 권징의 신실한 시행을 교회의 세 가지 표지로 제시하면서 표지에는 차등이 있으며, 말씀의 진정한 전파를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이니 다른 표지들은 다 이 첫째 표지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성례의 거행과 권징의 시행이 말씀의 전파 없이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말씀의 진정한 전파는 교회를 유지함과 교회로 하여금 신실한 신자들의 어머니 되게 함에 큰 방편이라고 하였다.
개혁교회는 참 교회를 구별하는 오직 하나 전적으로 중요한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전파라고 본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청취되는 곳에 교회가 있으며, 말씀이 전파되지 않는 곳에 교회가 임재하지 않으며, 말씀이 변질되는 곳에는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례의 정당한 거행이나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 말씀의 전파와 견줄 수는 없을지라도 교회의 중요한 표지로서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효율적 전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권징의 성경적 근거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아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자로서 거룩한 공회의 일원이 된 성도가 어떠한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거룩한 교회가 과연 그 성도에게 징벌을 가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사람의 논리적 설명으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권징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고의적이 아닌 범죄는 제사로서 속할 수 있었으나 고범죄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형벌을 받았다. ‘헤렘’(חרם)은 국가적 형벌임과 동시에 교회의 형벌이었다(출 30:33, 38; 레 17:4, 9). 이 끊어짐은 나환자들에게도 적용되었다(레 13:46). 진멸(殄滅)’로 해석되는 ‘헤렘(חרם)’은 히브리어로 ‘금지된 것’ 또는 ‘파괴하도록 정해진 것’을 의미하며, 성경에서 주로 사람이나 사물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는 행위를 지칭한다. 레위기, 신명기, 여호수아 등 구약 성경에서 등장하는 헤렘은 두 가지 주요 의미로 사용된다. 첫 번째는 전쟁 중 정복된 도시나 그 주민들을 완전히 파괴하거나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여호수아 6장에서는 여리고 성이 헤렘으로 지정되어 모든 것이 진멸된 것과 같은 것이다.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하나님께 바쳐져 더 이상 개인이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레위기 27:28-29에 언급된 대로 사람이든 짐승이든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팔거나 되찾을 수 없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충성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자들에 대한 처벌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헤렘은 종종 종교적, 도덕적 정화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신명기 13장에서는 우상 숭배를 하는 성읍이 헤렘으로 지정되어 그 성읍과 모든 주민들이 파괴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헤렘은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계약을 지키고 순수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은 시기에는 종교적 집단의 성격이 더 강하여 그 집단으로부터의 출회(黜會)가 순전한 교회적 권징으로 되었다(스 10:8; 눅 6:22; 요 9:22; 12:42; 16:2). 주님은 제자들에게 베드로의 고백과 관련하여 교회에게 매며 푸는 권세 즉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용되는가를 선언하며, 죄를 용서하며 용서하지 않는 권세를 주심으로 그의 교회에 권징을 제정하셨다(마 16:19; 18:18; 20:23). 교회의 주인(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권세를 교회에 주신 때문에 교회는 감히 이 권세를 행사한다. 신약의 여러 구절들은 이 권세의 시행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다(고전 5:2, 7, 13; 살후 3:14, 15; 딤전 1:20; 딛 3:10).
권징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주님의 왕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징이 너무 가혹하다거나 비성경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공정하면서도 철저한 권징을 시행할 때 항상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심정으로 권징을 시행해야 한다. 그것은 교회가 그 골격인 교리나 규율도 필요하지만 아름다운 장식인 사랑과 은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3. 권징의 신실한 시행의 필요
그리스도인에게는 교리적인 바른 신앙의 표준이 되는 신경(信經)만 아니라 도덕생활의 표준이 요구된다. 일반 성도의 생활이 수도원과 같은 은둔생활이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 매일 그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해야 하는 생활이다. 그리고 신자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는 공공연히 성경에 배치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 공동체에 모인 사람들의 신심(信心)의 수준이나 도덕적 생활이 일정하지 않아서, 더러는 교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교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 안에 있었다. 교회는 언제나 변함없이 교리적 정통을 보전하고, 거룩한 공회로서의 성성(聖性)을 수호해야 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자들에게 적당한 제재를 가하여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권징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권징은 범죄자를 벌하기 위한 것이 최종의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그로 하여금 회개하고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교회는 세상의 빛이어야 하고 소금이어야 한다. 교회는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항상 모든 사람과 사회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교회가 교리는 물론 도덕에서도 사회에 모범이 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은 권징의 절차와 효력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8:15-18).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가 권징을 시행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 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 강하게 질책하기도 하였다(고전 5:1, 2). 그리고 교회에서 행하는 방언이나 예언을 포함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고 권면하였다.
지상에 있는 공동체인 교회가 완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권징은 더욱더 필요하다. 권징은 교회로서 교회되게 하고, 성도로서 성도답게 살게 하는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교회의 권징이 법죄자를 벌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권징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전파에 있으며, 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하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게 함으로서 복음의 신실성을 증거하려는 것이다.
4. 권징의 대상이 되는 범죄
1) 범죄의 구성
본 총회의 권징조례에서는 범죄를 세 가지로 규정짓고 있다. ① 교인과 직원의 신앙과 행위, 또는 각급 치리회(당회, 노회, 총회)의 결의나 결정이나 성경에 위배된 심령적 육신적 행위, ② 성경에 의거하여 제정된 교회의 규례를 위반한 행위, ③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케 하거나 덕을 세우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모두 범죄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권징조례에서는 범죄를 ‘교인, 직원, 치리회를 불문하고 교훈과 심술과 행위가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나 혹 사정이 악하지 아니할지라도 다른 사람으로 범죄하게 한 것이나 덕을 세움에 방해되게 하는 것이 역시 범죄이다’고 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4번은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있어서 부족한 것이나 또는 어기는 것입니다’(요일 3:4; 약 4:17; 롬 3:23; 4:5; 약 2:10)고 하였다.
소요리문답에서 언급한 죄에 대한 정의는 “하나님의 법” 곧 성경 말씀과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세상의 법에서 범죄로 구성되는 것이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이 많을 것이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아무런 잘못이 아닌 것도 하나님의 법에서는 중대한 범죄가 되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잘못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바르게 살고 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법전이며, 자기를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시편 19편 7-13에서는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법도”라고 말하고 이는 “완전하고, 확실하며, 정직하며, 순결하고, 정경하고 진실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법이 자기로 숨은 허물까지 깨닫게 하고, 고의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하며, 죄가 자신의 주장하지 못하게 하기를 간구하였다. 그러면 자신이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다고 하였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상고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 물론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새로워지고, 영혼의 양식을 얻기도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자기의 죄를 발견하고, 철저하게 회개하여 그 죄를 끊고 돌아서야 한다.
2) 십계명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성경 말씀 전체가 법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적극적 명령, ‘하라’(Do)와 소극적 명령인 ‘하지 말라’(Do not)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죄가 되고,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면 죄가 된다. 그런데 우리들이 성경 말씀, 전체를 하나하나 기억하거나 전부 다 알기는 불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계율을 열 가지로 정리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도 독특한 것이다. 그것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직접 쓰셔서 모세에게 주신 것이다.
십계명(十誡命, עשרת הדברים(아쉐레트 하드바리임), 열 가지 말씀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계명이자 모세 율법의 핵심이다. 모세 율법은 출애굽기 20장 1절부터 23장 33절의 ‘계약서’나 신명기 1장-29장의 ‘신명기 법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핵심은 출애굽기 20장 1절-17절과 신명기 5장 6절-21절에 해당하는 십계명이라고 볼 수 있다. 개혁신학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9장 2절에서는 이 율법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 의에 대한 안전한 규칙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그것을 의의 규칙으로(약 1:25; 2:8, 10-12; 롬 13:8, 9; 신 5:32; 10:4) 두 돌 판에 십계명의 형식으로 기록하여 전해 주셨다. 처음 네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본분을 포함하고 있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본분을 포함하고 있다(출 20:3-18; 마 22:37-40)고 하였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9장 6절에서는 ‘참 신자들은 행위 언약으로서의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거나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롬 6:14, 갈 2:16, 3:13, 4:4, 5, 행 13:39, 롬 8:1). 그렇지만 이 율법은 불신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참 신자들에게도 행위 언약으로서의 율법이 아주 유용하다. 그것은 생활의 법칙으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그들이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서 알려 줌으로써, 그들을 지도하고 속박하며 그것에 따라 행하게 하기 때문이다(롬 7:12, 22, 25, 시 119:4-6, 고전 7:19, 갈 5:14-21). 또한 그들의 본성과 마음과 생활이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는 것을 발견케 하고(롬 7:7, 3:20), 그렇게 해서 자신들을 살핌으로써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고,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겸비하게 되고 죄를 증오하게 되며(약 1:23-25, 롬 7:9, 14, 24), 또한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자기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해 주기 때문인 것이다(갈 3:24, 25, 롬 8:3,4). 마찬가지로 중생한 자에게도 행위 언약으로서 율법이 유용함은 그것이 그들의 부패를 억제하고 죄를 금하기 때문이다(약 2:11, 시119:101, 104, 128). 그리고 그 율법은 비록 중생한 자들이 율법에 경고되어 있는 저주로부터는 해방되어 있을지라도 지은 죄들로 인하여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한 금생에서 어떠한 고통들을 기대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스 9:13, 14, 시 19:30-34). 역시 마찬가지로 율법의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고, 또 율법을 성취하는 때 그들에게 어떠한 축복들을 주시는가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엡 6:2, 3, 시 37:11, 마 5:5). 그러나 그러한 축복들은 행위언약으로서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마땅히 주어지는 것들은 아니다(갈 2:16, 눅 17:10). 그러기에 사람이 선을 행하고 악을 삼가는 것은 율법이 선을 권하고, 악을 그만 두게 하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가 율법 아래 있고, 은혜 아래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롬 6:12,14, 벧전 3:8-12, 시 34:12-16, 히 12:28, 2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십계명의 용도를 세 가지로 나타내었는데, 이것은 필리프 멜란히톤1)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시민법, 교육적인 용도로서의 법, 규범적인 용도로서의 법으로 나누었다. 특히 규범적인 용도는 신자가 구원을 받은 뒤에 계속적으로 삶에서 적용을 하도록 하며, 이러한 것은 종교개혁 당시 율법폐기론에 대항하는 것으로 그것과 대척점에 있는 신율법주의도 경계하였다. 제임스 어셔2)는 이 율법이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어두운 세상에서 말씀으로 길을 인도하는 등불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였고, 신자의 양심을 찔러 순종하게끔 도우며, 이것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깨닫게 한다고 해석하였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에서는 99번부터 148반까지 50문항을 십계명에 대한 문답으로 채우고 있으니. 이는 대요리문답 196문항의 25%가 넘는다. 그리고 소요리문답에서는 107문항 중 42-81문답까지 40문항이니 37%가 넘는 셈이다. 이처럼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서까지 십계명은 기독교의 중요한 계율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계명을 철저하게 준수하지 않는 사람을 올바른 신앙인이라 말할 수가 없다. 교회는 이 십계명을 범한 신자에 대하여 엄격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5. 권징의 의의와 목적
1) 권징의 의의
권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에 주신 권리를 행사하여 그가 세우신 법도를 시행하는 것이니, 범죄한 교인과 직원과 각 치리회를 지도하고 징계하는 것이다.3) 이러한 권징의 의의는 장로회 총회마다 단어의 선택이나 문맥의 순서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뜻은 모두가 동일하다. 박형룡 박사는 그리스도의 선지, 왕, 제사의 3직임과 관련하여 교회의 권세도 3중으로 나누는데, 교리권(敎理權), 치리권(治理權), 사역권(事役權)이라고 하였다.4) 칼빈은 교리권과 치리권(사법권, 입법권)으로 나누고, 교리권 못지않게 치리권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만일 교리의 설교는 있어도 개인적인 경고와 징벌과 그밖에 교리를 지칭하여 이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한 종류의 보조 수단이 결부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방종에 빠지게 되어서 해체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리에 반대하여 횡포를 부리는 자들을 단속하며, 길들이기 위한 고삐와 같은 것이며, 혹은 뜻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는 박차(拍車)와 같은 것이며, 때로는 심한 타락에 빠진 자를 유순하게,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의 온화함으로서 징계하는 아버지의 채찍과 같은 것이다”고 하였다.5)
박형룡 박사는 치리권은 그리스도의 왕권의 반영으로 입법권과 사법권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이를 다시 질서유지권과 순결유지권으로 나누었다. 하나님은 교회 일의 적정한 정리를 위하여 규율을 정하셨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고전 14:33), 고린도교회가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고 권면하였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율법을 시행하고, 교회 헌법, 혹은 교회 규율을 제정하여 질서 있게 하나님을 섬길 것을 말하였다.6)
교회는 교리적 도덕적으로 순결을 유지하여야 되므로 이단자와 범죄자를 거절하거나 배제하는 권세를 행사한다. 이 권세는 상당한 고시(考試)에 합격한 자들을 교회의 회원과 직원으로 받아들이고 그 중에 진리를 떠나거나 불명예의 생활을 하는 자들을 배제하여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므로 행사된다. 그리고 이 권세의 본격적인 행사는 권징에서 진행된다고 하였다.7)
2) 권징의 목적
우리 총회 헌법, 권징조례에서는 권징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정짓고 있다.
1. 범죄를 방지하여 교회의 신성과 질서를 유지한다.
2. 범죄자의 회개를 촉구하여 신령적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다.8) 권징조례에서는 두 항목으로 나누었지만 권징의 목적은 ① 교회의 성성(聖性) 보존, ② 교회의 질서 유지, ③ 범죄의 예방, ④ 범죄자의 회개 촉구, ⑤ 교회의 신령적 유익 도모의 다섯 가지가 권징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칼빈은 징계의 목적을 세 가지로 말하였다.
첫 번째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골 1:24)이기 때문에 어떤 치욕에 그 머리를 빠지게 함이 없이는 이런 종류의 불결한 것과 부패한 지체로 말미암아 타락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고 불명예스러운 생활을 보내는 자가 교회에 있어 하나님께 모욕을 끼치며,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엡 5:25)를 사악하고 모독적인 소굴로 만드는 자가 있다면 그를 그리스도인이라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에 치욕의 낙인을 찍는 자가 없게 하기 위하여, 기독교에 불명예를 초래하는 자들을 교회의 가족으로부터 추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번째는 일반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일이지만, 선량한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타락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적은 누룩이 떡 반죽 전체를 부패시키려 하는 위험을 내다보고 그들과 함께 하는 모든 결합을 금하고 있다.9) 이는 이방인처럼 죄를 범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것이다.
세 번째 목적은 이 사람들이 자신의 추악함에 대한 부끄러움에 놀라서 스스로 회개하게 하고자 함이다. 계속 부드럽게 해주면 더욱더 완악해 지는 자들은 채찍으로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기 때문에 그들의 악을 벌하는 일은 매우 유익한 것이다(살후 3:14).10)
박형룡 박사는 칼빈의 이 견해를 받아들여, 권징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순결을 유지함에 보익(補益)하며, 영적으로 병든 성도에 대한 교회의 권징은 그 치유를 추구하는 점에서 치유의 목적이 있고, 교회 일반의 안녕이 그 병든 회원의 끊어짐을 요하는 때에 권징은 정화의 목적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가능성 을 예단할지라도 죄인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권징을 시행할 것도 강조하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권징의 목적을 교회의 거룩을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을 보다 강조하였다.11)
결론
교회의 권징이 정치적인 이유로 교권의 유지나 어느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남용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이나 집단이 크게 책벌을 받아야 할 내용이다. 중세 시대에는 교권이 성경을 떠나 일반적인 세상 법정에서조차 행사하기 민망한 일들을 저질렀다. 그래서 권징이 교회의 성성을 보존하고 범죄를 예방하여 교회의 순전을 지키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더 타락하게 하고, 교회가 성도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 교회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가끔씩은 교회의 징계가 정적을 제거하거나, 어느 집단의 이익이나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이 없지는 않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있어서는 안 될 중대한 범죄이다. 반면에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권징의 권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교회가 강도의 굴혈이 되게 하거나, 범죄를 방조하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세 시대에는 교회가 그 징계의 목적이나 방법이나 대상에 있어서 성경이 가르친 바를 넘어 왜곡되게 시행하여, 생명이나 재산이나 지위를 박탈함으로서 국가적 징벌과 같은 일을 교회가 행한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교회의 징벌은 신령적인 것 이상을 추구할 수 없다. 교회의 징벌은 교회원을 대상으로 하며, 그 징벌은 신령적 유익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위기에 서 있다. 교회가 권징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거나 하지 못함으로서, 교회가 경건하고 신령한 집단으로서의 신뢰를 잃고 불신자는 물론 신자들에게까지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후일을 위해서 죽어 있는 권징을 되살려야 한다. 모든 법이 그러하듯이 교회의 권징은 모든 성도들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교회가 추호라도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부패와 타락으로 멸망의 길로 달려가던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쳤던 이사야의 절규를 들을 필요가 있다. ‘너희가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伸冤)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한 여호와의 말씀을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였다(사 1:16, 17).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곧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주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3-15). 주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당하지 않고,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고전 10:31) 권징을 통해서 교회를 정화하고, 교리적 순결을 유지하며, 신자들이 경건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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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리프 멜란히톤(독일어: Philipp Melanchthon; 1497-1560)은 독일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이다.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의 동료로서 종교개혁운동을 통한 복음주의의 확립을 위하여 투쟁하였다. 1519년 루터와 함께 라이프치히 논쟁에도 참석하였다.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개신교 신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노력하였다. 신학자들의 신학적 차이를 화해시키는 관용적 인물로 종교개혁 신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 다. 저서로는 「신학 강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 고백」 등이 있다.
2)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는 영국의 종교가·신학자. 아일랜드의 신학자로서 아일랜드의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서 공부한 후 모교의 신학 교수, 아르마그의 대주교로 31년간 봉직하였다. 칼빈주의자로서 아일랜드 교회의 독립에 노력하였고,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링컨 법학원 교수가 되었다. 국왕과 협력하였고, 내란 시에는 국왕과 청교도와의 사이의 조정에 노력하였다. 내란 후 공화제하에서도 크롬웰의 존경을 받았다. 높은 학식은 유럽 대륙에서도 유명하였다.
3) 총회 헌법, 권징조례, 제1장 총론, 제1조 권징의 의의, 2020,10,28, 대한예수교장로회
4) 교의신학 제6권(교회론), p, 120, 박형룡 저, 1974, 서울 은성문화사
5) 기독교강요 제4권(교회론), 12장 1절, P, 373, 존 칼빈 저, 김문제 역, 1977, 서울 세종문화사
6) 교의신학 제6권(교회론), pp, 166-168, 박형룡 저, 1974, 서울 은성문화사
7) 상기서, p, 168
8) 총회 헌법, 권징조례, 제1장 제2조, 권징의 목적
9) 기독교강요 제4권(교회론), 12장 6절, Pp, 376-377, 존 칼빈 저, 김문제 역, 1977, 서울 세종문화사
10) 상기서 p, 378
11) 교의신학 제6권(교회론), p, 169, 박형룡 저, 1974, 서울 은성문화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