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7일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봄은 정말 좋은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었던 만물이 깨어나는 계절이다. 박찬수 시인은 “봄의 찬가”에서 봄을 맞게 된 행복을 이렇게 읊고 있다. “햇살 빛나게 쏟아지는 이토록 아름다운 날/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저는 행복합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조차도 향기로운 이 아름다운 날/ 당신을 다시 사랑할 수 있어서 저는 행복합니다./ (중략) 혹시 당신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함에/ 저는 얼마나 두려워하였든지…/ 그리고/ 당신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햇살 좋은 오늘/ 당신을 다시 만남에 나는 행복합니다”.
시골 초가집을 둘러친 노란 개나리 울타리, 온 마을 산천에 노란 물을 뿌린 듯한 구례 산동의 산수유 꽃물결을 보라. 섬진강을 따라 구례에서 하동을 거쳐 남해 해안을 따라 꽃 터널을 이룬 길을 자동차로 달려보라! 부는 바람은 당신을 왕자로 맞아주는 듯 강바람 바닷바람이 팡파르를 울릴 것이다. 먼 길을 가지 않아도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사방이 꽃동산인 사오월이 아닌가?
우리 민족에게는 유독 봄에 많은 수난을 겪었다. 봄이면 돌 틈이나 울타리 밑에 보라색으로 피어나는 제비꽃을 오랑캐꽃이라 부르는 이유를 우리가 알고 있는가? 날이 풀리면 제비꽃이 필 때면 북녘 땅에 오랑캐들이 침노하여 우리 조상들에게서 양식을 약탈하고 아녀자를 사로잡아가서, 또는 꽃 모양이 오랑캐의 뒷 머리채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는 말도 있다. 여하간 오랑캐와 연관을 지어서 이름이 붙여진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북녘의 동포가 봄이 되어 수난을 당할 때 남녘의 동포들은 왜구에 의해서 시달림을 받았다. 임진왜란 역시 1592년 4월 봄에 일어났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대부분의 큰 사건이 봄에 있었다. 1960년 3.15부정선거와 4.19혁명, 1961년 5.16 군사혁명은 모두가 봄철인 3월에서 5월 어간에 일어난 사건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인 김재규 정보부장에 의해서 시해된 후에 모든 국민들은 일명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1980년 봄을 맞았다. 그러나 그 봄은 우리 민족사에 가장 잔인한 봄이 되었으니,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무수한 시민과 학생들이 우리 국군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었다. 2017년 3월 10일에는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해 파면되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비상계엄이 발표되고 몇 시간 만에 다시 해제되었으며,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렬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진영 간, 지역 간의 갈등으로 봄의 찬가가 아닌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는 것으로 혼란스러운 봄을 보냈으니, 그 한 달이 너무 아까울 뿐이다.
이런 중에 설상가상으로 영남지방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산불로 많은 인명피해는 물론 계산할 수조차 없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다. 무성하게 푸르렀던 산은 까만 숯덩이처럼 변했고, 마을의 집들과 농기구가 전부 타버리고, 애써 가꾸었던 비닐하우스의 작물이 문드러지고, 기르던 가축이 연기를 마시고 죽거나 불에 타서 죽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재난 지역을 찾은 정치 지도자를 붙들고 집도 잃고 가재도구도 모두 잃고 농기구마저 모두 타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가느냐며 울부짖는 아낙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 복받쳐 오르는 슬픔과 함께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래서 기다리던 봄이 다시 돌아와서 실망하지 않았고 행복하다고 읊은 시인의 노래나, 우리가 경험한 봄의 낭만이 유독 금년에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지금 우리에게 보릿고개나 춘궁기는 사라졌는데, 왜 그때보다 우리는 더 행복하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가? 이런 중에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웃을 사랑하고 화목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인가? 산불 현장이 아닌 광화문 광장에 목사가 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봄은 부활절이 있는 계절이다. 325년 5월 25일에 열린 니케아회의에서는 부활절 날짜를 춘분이 지난 만월 후 첫 주일, 즉 가장 좋은 희망의 계절, 달이 밝은 날로 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봄을 교회가 맞아야 한다. 교회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들로 봄을 맞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할 책임이 교회에 있다. 누가 뭐래도 봄은 아름다운 계절이고 사랑의 계절이다. 부활절이 있는 계절이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불렀던 사랑의 노래가 우리의 정원에 가득한 계절이 바로 봄이 아닌가(아 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