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주 목사 (예원교회, 총회 부총회장)
2026년 8월 16일
사도 바울이 전하는 구원의 축복과 참된 자유의 삶/로마서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_롬 1:8-15
우리의 사명
우리는 창세기 3장의 자기중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직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에 인생의 방향을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바로 오직 성령 충만입니다. 내 능력과 내 의지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비롯해서 각 교회나 신앙 공동체를 향해 다양한 서신서를 쓴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 가운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는 그곳의 죄수나 간수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직접 갈 수 없으니까 성도들을 향해서 복음의 진수를 누릴 수 있도록 서신을 쓴 것입니다. 이것이 옥중 서신이고 목회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복음 증거에 올인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사도 바울의 모습처럼 각자의 환경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축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 1:8-10)
앞의 성경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로마를 방문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신학자들은 로마교회의 시작을 사도행전 2장에서 찾습니다. 여기를 보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오직 기도에 전념하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한 내용이 나옵니다. 성령이 불같이, 바람같이 임하여 이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각기 다른 언어로 방언을 했습니다. 이때 전 세계에서 예루살렘으로 와 있던 경건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 역사를 보고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가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메시지를 듣고 회심한 이들이 로마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던 당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난 지 20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동안 로마에 복음이 증거되어 교회가 세워지고 좋은 믿음의 소식이 전파된 것을 본 사도 바울은 감사의 고백을 하면서 평상시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있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로마교회를 방문하려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롬 1:11-13)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맛보고 누린 복음을 이들이 더욱 사실적으로 맛보고 믿음을 견고하게 해서 더 큰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의 성경 말씀에 나오는 ‘견 고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스테리조’라고 하는데 ‘강하게 하다’, ‘확실하게 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스테리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베드로에게 부탁하신 말씀에도 나오는 단어입니다. 누가복음 22:32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가 ‘스테리조’입니다. 베드로가 지금의 체험을 발판으로 영적으로 견고해지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주변의 형제들을 견고하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이 견고하게 서서 더 큰 열매를 맺게 하려는 간절함을 가지고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도 바울이 가졌던 복음 24의 열정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사도 바울의 열정을 표현하는 문구가 나옵니다. 10절에 있는 ‘어떻게 하든지’라는 것과 15절에 나오는 ‘할 수 있는 대로’라는 표현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4에 보면 바울은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며 복음을 위해 생을 걸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5:13에서는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며 자신은 복음 증거를 위해 미쳤노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All or nothing’입니다. 중간단계는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전진하는 삶, 오직 영혼 구원을 향해 올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올인의 삶, 복음 24의 삶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살아나게 만듭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앞의 성경 말씀 12절에서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은 복음을 전하면서 안위를 얻고 로마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들으면서 안위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전하고 나누어 줄수록 자신에게도 유익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완벽하게 그릇을 준비해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죽을 때까지 기다려도 한 마디도 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좀 부족하다고 생각되더라도 현장에서 만남 가운데 복음을 전하다 보면 자신의 그릇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역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지,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제한하고 묶어두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 대해 구원 계획이 있으면 나의 모습, 상황, 형편, 나의 말재주와 상관없이 그 시간에 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생각의 틀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하나님의 산 역사를 체험하는 새로운 시작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빚진 자
사도 바울은 자신이 빚진 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롬 1:14-15). 빚진 자’는 헬라어로 ‘오페일레테스’이며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있어서 이러한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왜 복음에 대해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바울은 자신의 행위나 노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의 축복을 얻었기 때문에 이것을 영적인 빚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 믿기 전에 예수 믿는 자들만 골라서 열심을 다해서 핍박했기 때문에 더더욱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 빚을 갚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신다는 유일성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도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4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가 정치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헬라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문명인이나 미개인이나 유식한 자나 무식한 자나 어느 누구도 복음을 듣는 것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에게는 모든 사람이 복음 전할 대상이 되었고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고린도전서 9:16에 이렇게까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5에서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라며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복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복음을 받은 자 또한 더 깊은 복음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들에게 다시 복음의 불을 붙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겨 있는 그 복음의 깊이, 높이, 길이, 너비를 체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강단의 말씀을 통해 복음의 참 맛을 매시간 맛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도전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엄 부스는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Are you still burning?”라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불타고 있습니까?”라는 이 질문은 제가 가슴에 항상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영혼 구원의 열정으로 가슴이 불타고 있습니까? 복음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이 질문에 우리는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열정을 가지고 현장에서 생명 살리는 언약적 도전을 하게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