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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공동체, 세계 선교의 주역

정은주 목사 (예원교회, 총회 부총회장)

2026년 1월 19일

정은주 목사의 누가복음의 비밀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 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5-37 


영생의 길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무리 중에서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이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이런 질문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사의 의도를 아시고 “율법에 무엇이라 되어 있는지 말해 보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율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율법사답게 율법의 핵심을 찔러서 답변을 합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27절) 


율법사가 율법을 들어 일목요연한 답변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도 잘 알면 그대로 행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는 이 율법사가 영생에 대해 잘못 알고 있음을 지적하는 속뜻이 담겨 있습니다. 율법사는 어떤 행위와 노력을 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고 이러한 질문을 통해 은근히 자기 의를 주장하면서 자신이 의롭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의롭다고 말하는 정직, 양심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계획 속에 맞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루었느냐가 정직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사는 남들보다 착하고, 정직하고, 진실되게 살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예수님께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구원관입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 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인간이 주장하는 의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영생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말씀하셨습 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여러분은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영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행위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이웃의 범위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29절) 

율법사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어 누가 이웃이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은 자신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질문에 대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들어 진정한 이웃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는 이 사람의 옷을 빼앗고 심하게 때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해놓고는 달아나 버렸습니다. 한 제사장이 그곳을 지나다 강도당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냥 지나갔습니다. 또 레위인도 그곳을 지나갔지만 그를 돕지 않고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평소에 개, 돼지 취급을 하던 사마리아인이 그 사람을 구해주었습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33절) 


‘불쌍히 여기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뜨겁게 움직이는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당한 사람을 보는 순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아픔을 공유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를 치료하여 주고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돌보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의 제사장, 레위인과 같은 장로, 권사 등의 직분을 높게 평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뜨거운 마음이 있느냐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마리아인과 같은 영혼에 대한 사랑, 그 영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중심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는 선민의식 때문에 이방인에 대해 배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선민이 된 것은 자신들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인 선민사상을 벗지 못하고 이방인에 대한 복음사역을 제한하자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의 촛대를 안디옥 교회로 옮기신 것을 사도행전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 라 하시니라”(행 1:8) 


우리가 어떤 가슴과 사상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한 빛을 비추기 위한 행동과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의 목적과 방 향이 전도와 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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