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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원석 목사 (경기노회장·찬양교회)

2026년 8월 16일

“예배를 중심에 세우고, 복음으로 하나 되는 노회를 만들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기도와 전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는 노회가 되어야 합니다.”

경기노회장으로 경기도 성남에서 찬양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원석 목사, 자신의 목회와 노회 운영 방향을 이 한마디로 압축했다. 화려한 사업이나 외형적인 성장보다 예배의 회복과 복음 전도, 목회자 간의 진실한 연합을 통해 노회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제2의 고향 성남에서 목회자로 세워지기까지

임 목사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가난과 산업화, 도시 개발의 현장을 고스란히 통과해 왔다. 전북 고창군 대산면에서 태어나 전남 장성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서울로 올라왔고, 서울시의 철거 정책으로 가족과 함께 당시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성남에 정착했다.

“처음 성남에 왔을 때는 산등성이에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이 남한산성의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사용하던 시절입니다. 부모님들은 새벽 두세 시에 쌀과 물건을 이고 서울로 나가 장사하셨습니다. 성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성남은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 성남초등학교에 다니며 교회 주일학교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모교회는 태평제일교회다. 가난하고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예배와 신앙을 놓지 않았던 경험은 훗날 목회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청년 시절 그의 꿈은 목회자가 아니라 만화가였다.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해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만화를 배웠고,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꿈을 잠시 접고 건축 현장에 뛰어들어 목공과 타일, 페인트 기술을 익혔다.

1985년에는 달러를 벌어 가족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북아프리카 리비아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벵가지의 뜨거운 사막 기후 속에서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했다. 함께 간 노동자들이 혹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갔지만 그는 2년 가까이 현장을 지켰다. 몸은 쇠약해지고 허리까지 다쳤지만, 자신의 노동이 가족과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고된 타국 생활은 오히려 그를 하나님께 가까이 이끌었다.

“너무 힘들고 외로우니 고향과 교회가 그리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느꼈습니다.”

귀국 후 결혼한 그는 다시 싱가포르 건설 현장에서 일한 뒤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했다. 어머니는 일찍부터 “너는 목회자가 될 사람”이라며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자신은 목회자의 길을 부인했지만, 해외 노동 현장에서 받은 소명과 어머니의 기도가 결국 그를 신학과 목회의 길로 이끌었다.

 

오랫동안 무료급식 사역, ‘복음 통일’ 위해 기도

1992년에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회를 개척했다. 지하 예배실에서 시작해 상가로 이전했고, 이후 성남 산성동에 예배당을 마련했다. 개척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는 “목회자는 무엇보다 예배의 집례자이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라는 원칙을 놓지 않았다.

그의 목회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한 끼의 사랑’이다. 당시 성남에는 새벽 인력시장에 나와 하루 일거리를 기다리는 일용직 노동자가 많았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나온 이들은 아침조차 먹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교회는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후 지역의 홀몸 어르신과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까지 섬김의 범위를 넓혔다.

매주 30∼50명이 교회를 찾아 식사했으며, 무료급식 사역은 코로나19 이전까지 약 10년 동안 이어졌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제안도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고 예배드리는 일을 제한받지 않기 위해 교회와 성도들의 헌신으로 사역을 감당했다.

“우리가 착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고,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 끼를 대접한 것입니다.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다면 차라리 성도들과 자비량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밥을 나눈 뒤에는 언제나 말씀을 전하고 함께 예배드렸습니다.”

그는 목회 현장뿐 아니라 부흥사역에도 힘써 왔다. 여러 부흥사 단체와 교단 사역에 참여하면서 한국교회 회복을 위해 기도해 왔다. 그러나 집회와 행사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먼저 회개하고 순수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려면 목회자부터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지나친 정치적 대립과 세속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 과감히 떨쳐 내야 합니다.”

최근에는 찬양을 통한 전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직접 복음적인 시와 가사를 쓰고 동역자와 함께 곡을 만들어 영상으로 보급하고 있다. 저작권을 앞세워 수익을 얻기보다 누구나 자유롭게 찬양하고 전도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뜻이다. 특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현대인이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도록 버스킹 형식의 찬양 전도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노방전도와 지하철 전도가 위축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시대와 방법은 변할 수 있지만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회개하라는 말은 정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라는 초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진정한 회개가 일어납니다. 교회가 세상의 눈치를 보며 복음을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지혜롭게 전하되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경기노회장으로서 그가 품은 비전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노회에 속한 목회자들이 행정적인 관계를 넘어 서로의 목회 현장을 돌아보고, 기도와 전도에 함께 나서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목회자 수련회와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선후배 목회자가 경험을 나누고 어려운 교회를 돕는 연합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경기 지역 목회자들이 함께 연합하여 모임을 만들고, 수련회도 열 계획이다.

그의 마지막 기도제목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복음통일이다. 리비아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경험했기에 무력 충돌이 아닌 평화로운 통일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남과 북이 자유와 복음 안에서 하나 되고, 북한 땅에도 예배와 전도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사람을 세우시고 내리실 사람을 내리시도록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가난한 철거민의 아들에서 해외 노동자로, 만화가 지망생에서 개척 목회자와 노회장으로 이어진 임 목사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예배와 복음이었다. 그는 노회의 미래도 새로운 구호나 거대한 사업이 아닌 기본으로 돌아가는 데서 열린다고 믿는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경기노회가 기도하는 노회, 전도하는 노회, 서로 사랑하며 어려운 교회를 섬기는 노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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