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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은혜의 증인들> 구임덕 장로 (행복한교회, 송곡여자고등학교 교사)

2026년 7월 19일

“교회의 시간표 안에 제 인생의 시간표도 있었습니다”
강단 말씀으로 치유되고, 학교 현장에 복음을 흘려보내다…

구임덕 장로(사진 오른쪽)과 남편 김경일 안수집사 부부
구임덕 장로(사진 오른쪽)과 남편 김경일 안수집사 부부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되는 데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은혜의 시간이 있다. 겉으로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지만, 속으로는 오랜 두려움과 상처,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홀로 씨름하던 사람이 있었다. 행복한교회(담임 김한곤 목사)에서 중직자로 섬기고 있는 구임덕 장로는 26세에 처음 복음을 만났고, 이후 강단 말씀과 교회 공동체, 가정과 학교 현장을 통해 자신의 삶이 새롭게 빚어지는 과정을 경험했다.

구 장로는 자신의 신앙 여정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저는 이 교회의 증인입니다. 불신자로 왔다가 교회를 통해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시간표 안에 제 인생의 시간표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백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복음이 한 사람의 내면 깊은 곳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교회가 한 평신도의 삶을 어떻게 세우는지, 그리고 강단 말씀이 어떻게 삶의 현장으로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신앙고백이다.

 

두려움 속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

구 장로는 경기도 광주가 고향으로, 유교적 분위기가 강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성경학교에 간 기억은 있었지만, 지속적인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모님 역시 교회 다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오래된 두려움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악몽에 시달렸고, 꿈속에서 귀신이 쫓아오는 경험이 반복됐다. 성인이 되면서 그 고통은 더 심해졌다.

낮에도 커튼을 치고 지냈고, 밤에는 불을 켜놓아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겉으로는 성실하고 말 잘 듣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내면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공포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흘리며 잠을 청하던 시간들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남모르는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깊이 자리하는 청년으로 성장하고, 대학원 졸업 후  미션스쿨인 숭의여고 교사 지원과 관련해 교회 출석 증명서가 필요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던 구 장로에게는 난감한 일이었지만, 그때 김한곤 목사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김 목사는 다른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먼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초청을 하고, 복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저 기도를 따라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날부터 불을 끄고 잤습니다. 예수님을 얼마나 알았겠습니까. 그냥 따라 한 것뿐이었는데,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처음 체험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를 붙들고 있던 두려움이 떠나갔다. 복음은 그에게 지식이 아니라 실제 사건으로 다가왔다.

 

 강단 말씀이 삶에서 확인되다

신앙생활은 행복한교회 지하 예배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믿음은 생겼지만, 삶의 상처와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얼굴에 웃음이 없었고, 늘 긴장된 얼굴로 살아갔다. 억지로 참고 버티는 시간이 많았다.

김한곤 목사와 3년 동안 일대일로 말씀 양육을 받았다. 김 목사조차 “목회 인생에서 일대일로 3년 동안 양육받은 사람은 구 장로가 유일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명절에도 그 어떤 약속보다 양육받는 그 말씀의 시간이 좋았고, 말씀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말씀이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시간이 지나면서 구 장로는 강단 말씀이 삶에서 그대로 확인되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목회자가 전한 말씀이 한 주간 자신의 사건과 현장 속에서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던 말씀도 시간이 지나면 삶의 장면 속에서 이해되었다.

“강단 말씀이 제 삶에서 그대로 확인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바빴습니다. 문제보다 말씀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신앙생활은 특별한 체험을 좇는 일이 아니었다. 매주 주어지는 강단 말씀을 붙잡고, 그것이 삶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그 시간들이 쌓이며 그의 인생은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결혼을 통해 받은 치유, 그리고 후대의 축복

구 장로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선을 여러 번 보았지만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36세에 지금의 남편(김경일 안수집사)을 만나게 되었다. 결혼을 두고 기도하던 중 강단 말씀이 그의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 말씀은 결혼을 두고 기도하던 그에게 응답처럼 다가왔다.  남편을 “하나님이 주신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남편을 통해 제가 많이 치유되었습니다. 제가 부정적인 사람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늘 존중해 주고, 귀하게 봐주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받으면서 제가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혼을 통해 하나님이 왜 가정을 축복으로 주셨는지 깨닫게 되었다. 가정은 단순한 생활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상처를 만지고 인격을 회복시키는 은혜의 통로였다.

 

교회는 부족함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 직분을 통해 넓어진 신앙의 그릇

구 장로는 교회를 생각할 때 늘 감사가 먼저 나온다고 말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매주 강단에서 말씀이 주어졌고, 그 말씀이 자신의 삶을 인도했기 때문이다.

구 장로는 자신이 앞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인간관계도 서툴렀고, 교제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에서 맡겨진 직분은 그의 삶을 조금씩 바꾸어 갔다. 중고등부 교사를 맡으면서 아이들과 이야기할 이유가 생겼고, 여전도회장과 새가족국을 맡으면서 성도들과 교제할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장로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중직자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부담도 컸다. 그러나 그는 직분을 통해 오히려 치유를 받았다. “직분이 제게 축복이었습니다. 제 수준에 갇힌 신앙생활을 했을 텐데, 직분을 통해 연령층도 넓어지고 많은 사람들과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새가족국 사역은 그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목회자가 “20년 동안 안 된 것만 이야기하라”고 했을 때, 그는 오히려 자신이 받은 은혜를 마음껏 나눌 수 있었다.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해도 행복했다. 그 과정에서 ‘영혼’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지 않았지만, 새가족을 만나며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교회가 자신을 변화시켰듯, 새가족과 후대도 교회를 통해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학교 현장으로 흘러간 복음

구 장로는 현재 서울 송곡여자고등학교 화학교사로서 근무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했다. 처음 교사가 되고 싶었던 마음은 개인적인 상처와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사명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그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 현장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송곡재단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가 어느날 정교사가 되었는데, 그 과정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 복음 가진 교사의 사명을 깨달으면서 기도를 하게 됐는데, 학교의 유일한 과학교사가 갑작스레 소천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정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 발령을 받으면서 받은 강단말씀은 행 27:24, “나와 함께 항해하는 자”였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대로 응답을 받았다. 교회 부임 이후 16년 만에 행복한교회가 송곡여고 옆으로 이전을 하면서, 함께 항해하는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송곡여고로 옮기고, 학교 안에서 교목과 선교부, 신우회와 연결되면서 학교 복음화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코로나 시기에는 예배가 멈추고 모임이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그는 교회의 소중함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학교에서 온라인 예배와 기도모임이 이어지고, 교회가 학교 현장으로 들어오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저만의 전도는 강단 말씀이 저에게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 흘러가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는 신우회 총무를 맡으며 매주 선생님들에게 강단 말씀과 기도제목을 나누었다. 점심기도회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때로는 말씀을 전했다. 학생들이 예배하는 모습을 보며 오래전 꿈꾸었던 장면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학교 예배에는 20명에서 40명 가량의 학생들이 함께하고,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예배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때 행복한교회 청년들이 찬양팀으로 섬기고, 외부 팀이 함께하며 학교 현장에 복음의 문이 열리는 일도 있었다.

그는 앞으로 남은 교직 생활 동안 학교를 더 깊이 품고 싶다고 말한다. 특히 송곡재단과 학교 현장에 복음이 지속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교회가 시스템으로 들어와 부활절과 성탄절 예배, 학생 사역을 함께 감당하는 길이 열리기를 기도하고 있다.

 

“복음이 아니었다면 제 인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구 장로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분명하게 고백한다. 복음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변화는 불가능했다. 인간관계, 삶의 태도, 사회생활, 세계관, 가정과 현장을 바라보는 눈이 모두 바뀌었다. “세상 어느 것이 저를 이렇게 바꾸겠습니까. 저를 바꿔주신 것은 강단 말씀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은 말씀을 통해 제 인생이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은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이다. 자신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전도하고, 더 많이 헌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더욱 겸손히 말한다.

“한 영혼이 너무 소중합니다. 제가 받은 은혜와 말씀을 후대들에게 남기고 싶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행복한 곳인지, 하나님이 말씀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 평신도의 삶 안에는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 깊은 시간이 있다. 두려움 속에서 복음을 만난 한 사람이 강단 말씀을 따라가며 치유되고, 가정을 통해 웃음을 회복하고, 교회를 통해 직분의 축복을 누리며, 학교 현장에 복음을 흘려보내는 증인이 되었다.

그의 고백처럼, 교회의 시간표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 시간표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표는 지금도 가정과 교회, 학교와 후대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오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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