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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현식 목사 (대경노회장·영남개혁신학교 학장)

2026년 7월 19일

“예루살렘보다 갈릴리의 목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교회 개척, 신학교 설립, 해외선교로 이어진 53년 목회 여정

김현식 목사가 설립한 영남개혁신학교는 지금까지 3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사진은 학위식 이후 교수진과 졸업생이 함께 기념촬영 한 모습.>
김현식 목사가 설립한 영남개혁신학교는 지금까지 3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사진은 학위식 이후 교수진과 졸업생이 함께 기념촬영 한 모습.>

한 목회자의 사역은 한 교회의 강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교회를 개척했고, 외국인노동자를 섬겼으며, 신학교를 세우고, 노회를 조직했으며, 해외 현지 목회자들을 길러냈다. 1973년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한 김현식 목사에게 목회는 ‘자리’가 아니라 ‘사명’이었다. 서울과 마산, 부산, 대구·경산 등 여러 지역에서 목회한 그는 지금까지 53년의 목회 여정을 걸어오며 교회 개척, 교육목회, 선교목회를 함께 감당해 왔다.

현재 김현식 목사(74)는 경북 경산에 위치한 영남개혁신학 학장으로 섬기고 있다. 영남개혁신학은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와 캘리포니아연합대학 인증 과정을 통해 목회자와 선교사, 교수 요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예루살렘의 목회보다 갈릴리의 목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크고 화려한 중심보다,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목회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김 목사의 목회에는 늘 ‘현장’이 있었다. 교회 안 성도들뿐 아니라 외국인노동자, 신학생, 현지 목회자, 선교사, 작은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이 그의 목회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기도에서 시작된 목회자의 길

김 목사의 신앙 배경은 깊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믿음의 가문에서 자랐고, 6남매 모두가 신앙 안에서 헌신의 길을 걸었다. 4형제가 목사가 되었고, 막내는 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 신앙 가문의 유산은 후대에게까지 이어져 목회자 가문이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목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김 목사의 인생 밑바탕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다. 그의 기억 속 어머니는 새벽마다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 기도했고, 자녀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살았다. 김 목사는 자신의 목회 출발점에 대해 “어머니의 기도가 강하게 있었다”고 말한다. 그 기도는 한 사람의 목회자를 세우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자녀들의 헌신으로 이어졌고, 교회와 신학교, 노회와 선교지로 흘러갔다.

 

세 가지 목회, 교회 개척과 교육과 선교

김 목사의 목회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교회 개척과 현장 목회다. 그는 1973년부터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해 여러 지역에서 목회했고, 세 곳의 교회를 개척했다. 군종목회도 감당하며 공군기지에서 부대 최초로 주일학교와 학생회, 성가대를 조직해 복음을 전했다.

둘째는 교육목회다. 김 목사는 오래전부터 목회자 양성의 중요성을 품고 있었다. 2003년부터 약 10년 동안 선교 현지 사역을 위한 신학 강좌를 개설하며 교수들을 파송했고, 이후 이 사역을 동북아선교대학으로 확대 개편했다. 2014년에는 한국에 법인 사무실과 신학교를 설치·운영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영남개혁신학교로 교명을 변경하며 본격적인 교육기관으로 틀을 갖추었다.

영남개혁신학은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와 MOU를 체결했고, 미국 대학과도 협력 관계를 맺어 학생들이 학위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2026년 4월 학위수여식에서는 총 17명이 학위를 받았다. 이 가운데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 목회학석사 과정 10명, 미국 대학 박사학위 과정 7명이 포함되었다.

셋째는 선교목회다. 김 목사는 신학교를 통해 배출된 사역자들을 국내외로 파송하고, 해외 현지 목회자들을 교육해 교회 개척과 복음 사역을 이어가도록 돕고 있다. 현재 노회 소속 선교사들은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스리랑카, 탄자니아 등지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국내외에 연결된 교회는 30여 개에 이른다. 그는 현지 목회자를 교육하고, 목사로 세우고, 다시 교회를 개척하게 하는 일을 선교의 중요한 방향으로 삼고 있다.

 

외국인노동자 곁에서 배운 갈릴리 목회

김 목사가 말하는 ‘갈릴리 목회’는 단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 곁에 섰다. 한마디로 소외된 자, 나그네들을 위한 목회를 했다. 약 7년 동안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상담소와 외국인교회 사역을 감당했다. 우리나라 90년대만 해도 외국인노동자들은 언어도, 제도도, 문화도 낯선 한국 사회에서 의지할 곳이 많지 않았다. 출입국 문제와 노동 현장의 어려움, 사고와 질병, 때로는 죽음과 자살의 위기까지 목격해야 했다.

김 목사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때로는 사택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을 재우고, 정부 기관과도 부딪히며 이들을 도왔다. 그에게 외국인노동자 사역은 사회봉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음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일이었다. “어릴 때 선교사들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외국인노동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로서 그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목회란 교회 안의 안정된 울타리만 지키는 일이 아니었다. 상처 입은 사람 곁에 서고, 이름 없이 밀려난 사람을 품고, 복음이 필요한 현장으로 찾아가는 일이었다.

 

신학교와 노회, 사람을 세우는 사역

김 목사는 오래전부터 뜻있는 목회자들과 함께 해외 선교를 꿈꾸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아 외국 선교를 하자는 작은 움직임에서 출발해, 일본과 러시아, 몽골, 더 나아가 북한 교회 복원까지 바라보는 비전도 품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국내 본부와 교육기관, 그리고 교단적 틀이 필요했다.

그렇게 신학교가 세워졌고, 법인화와 이사회 구성을 통해 사역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후 개혁교단과 연결되면서 신학교와 대경노회가 함께 세워졌다. 김 목사는 신학교를 통해 목회자와 선교사, 교수 요원을 양성하고, 노회를 통해 목사 안수와 파송 사역을 감당해 왔다.

특히 그는 여성 사역자들의 안수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보았다. 신학교 학생 가운데 여성 비율이 높았고, 이들을 사역자로 세우기 위해 노회와 교단적 틀이 필요했다. 그렇게 목회자 양성과 안수, 파송의 길이 열렸다. 그동안 3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현재는 19명의 교수들이 60여 명의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신자는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 학자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식보다 인격, 직함보다 신실함, 조직보다 복음의 본질이 먼저라는 것이다. 이런 기도와 헌신 속에서, 김 목사와 함께 대경노회가 세워진 것이다. 대경노회 산하에는 국내외에 약 70여 개 교회가 세워졌고, 각 개교회가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노회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이런 중심 속에서, 대구노회(강서측)와도 조금씩 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노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몇 차례 만남과 교류가 있었고, 7월에도 일정이 잡혀 있다. 김 목사는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서로 배려하며 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선교, 현지 목회자를 세우다

대경노회는 태국, 스리랑카, 탄자니아, 필리핀, 캄보디아 등에 10여 명의 선교사 파송, 2명의 순회 선교사를 파송했다. 특피 캄보디아 프놈펜에는 현지 신학교를 설립해서 현지인들을 제자로 양육하며, 오는 12월에는 20명이 졸업을 하게 된다. 2024년에 캄보디아 프놈펜 캠퍼스를 개강하고 감사예배와 특별세미나를 진행했다. 현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신학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노회 소속 목사와 교수들이 1년에 여러 차례 해외에 파송되어 교육과 세미나를 감당한다.

김 목사의 선교 철학은 분명하다. 선교는 단순히 재정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현지 사역자를 교육하고, 복음의 일꾼으로 세우며, 그들이 다시 자기 땅에서 교회를 개척하도록 돕는 것이다. “선교사를 보내고, 현지 목회자를 교육하고, 교회를 개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복음이 그 땅에 뿌리내리려면 현지 사역자가 세워져야 합니다.”

 

한국교회를 향한 질문, “무엇이 복음인가”

김 목사는 지금도 바쁘게 산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신학교와 노회, 해외 선교와 국내 교회, 현지 캠퍼스와 목회자 양성을 위해 여전히 뛰고 있다. 하루에 수면 시간이 서너 시간밖에 되지 않을 만큼, 바쁜 목회 여정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사역의 결론은 복잡하지 않다. 결국 복음이다.

교회를 개척한 것도, 신학교를 세운 것도, 노회를 조직한 것도,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것도 모두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세우기 위한 일이었다. 그의 목회 여정은 교회 개척, 교육, 선교라는 세 흐름을 지나 하나의 고백으로 모인다.

 

“한국교회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루살렘보다 갈릴리를 꿈꾸었던 목회자. 큰 중심보다 낮은 현장을 향했던 사역자.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세우고, 선교지를 세우며 걸어온 53년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 목사는, 사람을 모으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복음, 조직을 키우는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복음이라고 강조한다.

 

/오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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