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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김성권 목사 (수도노회장·이웃교회)

2026년 5월 17일

“정직한 신앙, 정직한 정신, 정직한 생활”에 방향
지역에 필요한 교회, ‘존재 이유가 있는 공동체’ 될 것


충남 예산에 자리한 이웃교회, 김성권 목사는 최근 오랫동안 사역했던 목회지 부천을 떠나 예산에서 새롭게 헌당예배를 드리며, 제2의 시작을 알렸다. 더불어 총회 교육부 서기를 맡아, 전국 목회자부부 수양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중이다. 

목회자가 된 이후, 김 목사의 목회 방향은 개교회의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늘 어린이와 청소년 사역, 지역 공동체를 향해 있었다. 그래서 교회의 방향도 ‘이웃과 사회를 섬김으로 사랑 을 실천하는 교회’에 두고 있다. 복음이 삶과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의 지난 인생 여정이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의 기도에서 시작된 부르심 

한 목회자의 신앙 여정은 전라북도 완주군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 그 출발점에는 마을 64세대 가운데 유일하게 예수를 믿던 외할머니(최동식 권사)가 있었다. 외조모는 교회까지 먼 길을 걸어 예배드렸고, 남편의 반대 속에서도 주일이면 눈을 피해 예배당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그는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녔고, 새벽기도와 성미를 떼어 놓던 생활 신앙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랐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곧바로 신앙이 깊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가정 형편은 어려웠고, 삶의 무게는 일찍 그를 생계의 자리로 내몰았다. 중학교를 마친 뒤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어린 나이에 가족 부양을 책임져야 했다. 교회에 다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회심은 훗날 20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분명하게 찾아왔다. 

전환점은 인생의 혼란과 방황 한가운데서 찾아왔다. 직장생활을 하며 교회를 피해 다니던 시절, 외할머니의 권면으로 시작된 철야기도는 그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강하게 경험했고, 이후 곧바로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기 시작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교사 사역을 맡게 된 셈이었다. 처음에는 기도도 서툴고 성경지식도 부족했지만, 그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현장에서 신앙과 사역을 함께 배워 갔다. 두 달 만에 맡은 반 아이들이 21명으로 늘어났고,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이 다음 세대를 위한 부르심을 받았음을 더욱 분명히 확인하게 됐다. 

이후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신학교에 진학했고, 학부와 연구원, 신학원,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배움의 길을 걸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신학은 그에게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특히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삶에 적용되는 신학, 교회 현장과 성도의 실제 삶에 닿는 신학을 세워 가는 과정은 이후 그의 목회 철학을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그러다보니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의 의미는, 김 목사에게 남다를 수밖 에 없다. 

그의 사역은 자연스럽게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교육목회 전반으로 확장됐다. 어린이전도협회와 어린이교육선교회 사역에 참여하며 오랜 시간 어린이사역의 현장을 지켰고, 청소년 집회와 상담, 회복 사역에도 헌신했다. 특히 위기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 목회자 자녀, 가정 갈등 속에 상처 입은 아이 들을 만나며 그는 “교회가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 아니라 다시 세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더욱 굳혔다. 

병상에서의 경험도 그의 사역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산업현장에서 큰 사고를 당해 장기간 입원했던 시절, 그는 병실에서 밤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을 붙들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 게 ‘미친 기도’로 보였지만, 결국 그 기도는 병동의 환자와 간호사, 의료진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퇴원 후 그는 거리 전도와 직장 신우회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나섰고, 복음이 삶의 현장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품게 됐다. 


삶으로 증명되는 신앙이 목회의 출발점 

그가 평생 붙들어 온 목회 모토는 분명하다. “정직한 신앙, 정직한 정신, 정직한 생활”이다. 이 세 문장은 단순한 표어가 아니라 그의 신앙과 목회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그는 오늘 한국교회가 여러 위기를 겪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일상에서는 복음이 드러나지 않고, 강단에서는 믿음을 외치지만 삶의 자리에서는 정직함이 무너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앙의 진정성은 결국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직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는 태도이고, 정직한 정신은 왜곡된 욕망과 세속적 계산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건강성이다. 그리고 정직한 생활은 말과 행동, 가정과 직장, 교회와 세상 속에서 복음이 실제로 증명되는 삶을 의미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정신도 건강해지고, 행동도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결국 신앙은 강단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열매로 평가받는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믿음이다. 


반찬 나눔에서 동행매니저 사업까지… 초고령사회 앞둔 교회의 새 사역 모델 제시 

2000년대 이후 그의 목회 시선은 점차 교회 울타리 안을 넘어 지역사회 한복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목회에 오랜 시간 헌신해 온 그에게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오늘 교회는 그 목적을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은 결국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향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2008년 교회 개척과 함께 그는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나서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거창한 시스템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산도, 조직도, 후원 기반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김 목사가 손댄 사역은 아주 생활밀착형이었다. 반찬 20개를 먼저 주문해 놓고, 그것을 누구에게 전할지 일주일 동안 직접 찾아다녔다. 허리가 굽어 장을 보기 어려운 어르신, 집안 수리가 안 돼도 손 쓸 힘이 없는 독거노인, 전등 하나 갈지 못해 어두운 방에서 지내는 이들, 문고리와 수도꼭지가 고장 나 생활이 불편한 이들, 병원에 가고 싶어도 동행할 사람이 없어 치료를 미루는 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반찬을 전하고, 등을 갈아드리고, 수도꼭지를 고쳐드리고, 병원까지 함께 걸어가는 일은 작아 보였지만, 지역사회 안에서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이후 김 목사는 NGO 단체인 ‘나눔과 기쁨’ 사역과 연결되면서 보다 구조적인 복지 사역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단순한 일회성 나눔이 아니라, 후원자와 대상자를 연결하고, 꾸준히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소액이라도 정기 후원을 연결해 반찬 나눔이 지속되도록 하고, 지역 안에서 발굴된 이웃들에게 필요한 지원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세워 갔다. 그는 “목사가 후원을 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순수하게 돕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니 소액이라도 함께하는 분들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실제로 매달 1만 원, 2만 원씩 정기적으로 동참하는 후원자들이 모여, 지역의 복지 사각지대 이웃을 꾸준히 섬기는 기반이 마련됐다. 

그의 지역사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단순히 물질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 사람 곁에 사람을 세우는 구조로 발전한 것이다. 그 핵심이 바로 ‘동행매니저 사업'이다. 

동행매니저 사업은 말 그대로 누군가의 삶에 “함께 걸어 주는 사람”을 세우는 사역이다. 그는 오늘 한국사회, 특히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현실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라고 본다. 병원에 가야 하지만 혼자 갈 수 없는 어르신, 수술이나 검진 설명을 들어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노인, 자녀는 있지만 사실상 홀로 지내는 분들, 외로움과 불안 속에 일상 기능이 급격히 무너지는 이들에게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지속적인 동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돌봄을 넘어, 교회 안에 새로운 사역 모델과 일자리 모델을 동시에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50대 이상 성도들과 은퇴자들을 주목한다. 이들이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거쳐 동행매니저, 노인심리상담, 치매예방교육 강사 등으로 세워질 수 있다면, 교회는 단순히 봉사자를 동원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사역 인력을 배출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로당, 노인정, 요양원, 데이케어센터, 복지관 등과 연결된다면 교회는 예배당 안에 머무는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돌봄의 실질적 거점이 될 수 있다. 

특히 김 목사가 힘주어 말하는 분야는 치매예방교육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유아부와 어린이 교육 현장에서 사용해 온 자료와 프로그램을 거꾸로 실버세대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아 왔다. 손 유희, 색칠 활동, 따라 하기, 간단한 율동, 찬양 반복, 성경 암송과 같은 요소들이 단지 어린이 교육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지 기능 유지와 정서적 안정, 공동체 관계 회복이 절실한 노년층에게도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다. “유아부 교재를 80대 치매예방교육에 연결할 수 있다”는 그의 발상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 안에는 성경, 찬양, 인지 자극, 정서 안정, 관계 회복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트로트식 복음성가, 손 동작이 있는 찬양, 따라 말하기, 색칠공부, 소그룹 교제, 성경 이야기 회상 등을 결합하면, 교회는 어르신들에게 단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아니라 삶의 활력을 되찾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동시에 복음의 접촉점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교회에 처음 발을 들이는 노년층 중에는 예배보다 이러한 돌봄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역을 위해 그는 민간 자격증 과정, 강의 교재, 실기 교육 시스템 구축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단순히 “좋은 일”을 하자는 차원을 넘어서, 실제 현장에서 지속 가능하게 운영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행매니저와 치매예방교육 강사, 노인심리상담 훈련 과정을 통해 각 지역 교회가 자체적으로 실버 사역 인력을 세우고, 필요 시 외부 기관과도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김 목사는 오늘 한국교회가 다음세대 사역만큼이나 실버 사역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모든 비전의 바탕에는 그의 분명한 목회 철학이 놓여 있다. 교회는 지역 안에서 존재 이유를 보여 주어야 하며, 복음은 반드시 사람의 실제 삶에 닿아야 한다는 믿음이다. 김 목사는 예산에서 제2의 시작을 하면서, “저 교회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 교회가 아니라, “저 교회는 꼭 있어야 한다”는 평가를 받는 교회가 되는 것이 기도제목이라고 밝혔다.


/ 오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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