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서울 예원교회)
2025년 6월 16일
사무엘상 7:3-11
Ⅰ. 서 론
사무엘상 7장 3–12절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우상 숭배의 죄악에서 돌이켜 여호와께 회개하고, 그 회개 위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전환점을 보여주는 본문이다. 본문은 단순한 민족적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회개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는 공동체의 신앙 회복을 중심에 두고 있다.1)
본문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3–6절까지의 회개와 금식의 선포, 공동체적 자복의 장면이며, 둘째는 7–12절까지의 블레셋 침공 속에서 하나님의 개입과 구원, 그리고 승리를 기념하는 ‘에벤에셀’ 사건이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대응이 아닌 예배 중심의 대응으로, 신앙 공동체의 본질을 되찾는 행위라 할 수 있다.2)
사무엘은 사사이자 제사장,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이스라엘을 회개의 자리로 이끈다. 이는 사사기의 반복되는 구조인 타락–징계–회개–회복의 구도를 따라가되,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도하시는 구원의 역사임을 강조한다. 회개 없는 회복은 없고, 언약 갱신 없는 진정한 승리도 없다는 본문의 메시지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3)
특히 12절에서 사무엘이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명명하며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선포한 행위는, 단순한 승리 기념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는 신앙의 고백이며, 공동체의 믿음을 재정비하는 상징적 사건이다.4)
Ⅱ. 본론
A. 사무엘상 7장 3절 주해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신앙 갱신을 향한 출발점으로, 사무엘이 전 민족에게 선포한 언약적 회개의 조건문이다. 본문은 구조상 네 가지 주요 요소로 나뉘며, 각각 회개의 조건, 구체적 실천, 예배의 방향성, 구원의 약속으로 구성된다.
첫째,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표현에서 ‘전심’(בְּכָל־לְבַבְכֶם)은 구약 전체에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언약 관계 회복을 요구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신 6:5 참조). 이는 감정적인 후회나 일시적 반응이 아닌, 전 인격의 방향성 전환을 의미하며, 히브리어 ‘שׁוּב’(shuv)는 죄로부터 돌아섬과 동시에 하나님께로 향함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한다.5)
둘째, 이 회개는 단지 내면적 결단이 아닌 구체적인 우상 제거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은 당시 이스라엘이 섬기던 바알 신앙과 풍요의 여신 아스다롯을 의미하며, ‘제거하다’(וַהָסִירוּ)는 강한 명령형 동사로, 우상을 뿌리째 뽑아내는 철저한 단절을 요구한다.6) 바알 신앙은 비와 곡식의 풍요, 아스다롯은 다산과 전쟁의 승리를 상징했기에, 이 둘의 제거는 곧 경제적·정치적 안전에 대한 의존을 포기하고 오직 여호와께 의지하겠다는 신앙적 선언이었다.7)
셋째,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는 명령은 회개가 곧 예배의 방향 재설정임을 보여준다. ‘하킨’(הָכִינוּ, 준비하다)은 마음을 여호와께 정렬하라는 의미로, 내면의 중심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영적 구조의 재배열이다. ‘섬기다’(עָבַד)는 예배, 순종, 봉사를 포함한 포괄적 개념이며, ‘그만을’(לְבַדּוֹ)는 배타적 예배를 강조하는 신명기적 표현이다.8)
넷째, “그리하면… 건져내시리라”는 구조는 언약적 구속사 신학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순종에 따르는 하나님의 구원은 조건적이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구원의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다. “블레셋의 손”은 단순한 민족의 위협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언약을 저버릴 때 경험하게 되는 심판의 도구이자 훈련의 수단으로 등장한다.9)
B. 사무엘상 7장 4절 주해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이 구절은 앞선 사무엘의 권면(7:3)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실천적 응답을 요약하는 진술이다. 회개의 요청이 실제로 받아들여졌으며, 그들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는 행위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적 재헌신을 드러내는 결정적 행동이다.
본문은 짧지만, 세 가지 핵심 행위가 강조된다: 우상 제거, 여호와만 섬김, 그리고 공동체적 순종의 실현이다.
첫째,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וַיָּסִירוּ אֶת־הַבְּעָלִים וְאֶת־הָעַשְׁתָּרוֹת)는 단지 신상 파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바사르’(וַיָּסִירוּ)는 강한 제거 동사로, 철저한 단절과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포함한다.10) 바알과 아스다롯은 가나안 종교 체계에서 핵심적인 신들로, 바알은 폭풍과 비의 신, 곧 농업 경제의 생명줄이었고, 아스다롯은 다산과 성적 풍요를 대표하는 여신이었다.11) 이들을 제거한다는 것은 종교적 신념 이상의 결단이며, 경제적 안정과 다산이라는 인간 본능적 의존을 끊고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을 맡기는 신앙적 행위였다.12)
둘째, “여호와만 섬기니라”(וַיַּעַבְדוּ אֶת־יְהוָה לְבַדּוֹ)는 신명기 신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섬기다’(עָבַד)는 단지 제의적 행위가 아닌, 전인격적 순종과 복종, 그리고 일상적 충성을 포함하는 단어이다. 여기에 ‘그만을’(לְבַדּוֹ)이라는 단어가 덧붙여지면서, 이는 단순히 우상을 제거한 후 생긴 종교적 공백을 메운 정도가 아니라, 신앙의 방향과 중심을 명확히 정립한 선택적 전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13)
이 절은 사무엘의 선포(7:3)가 단지 위협이 아닌 복음적 권면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말씀에 전심으로 응답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이로써 4절은 이후 전개되는 ‘공동체적 회개(5–6절)’와 ‘하나님의 초자연적 구원(10절)’에 앞서, 회개의 열매로서 순종이 선행됨을 보여주는 결정적 구절이 된다.14)
C. 사무엘상 7장 5-6절 주해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에게 미스바로 모이라 명한다. 미스바는 사사기 20장 등에서 국가적 위기나 종교적 결단이 이루어진 장소로 이미 의미가 축적된 곳이다.15) 이스라엘 전체가 미스바에 모인다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집합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 재헌신을 위한 신앙 공동체의 소집이었다. 특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는 사무엘의 말은, 그가 단지 지도자가 아닌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천명하는 대목이다.16)
여기서 중보는 단지 중간자의 역할이 아닌, 죄의 용서를 위한 제사적, 예언자적, 사사적 기능의 총합적 표현이다. 이 장면은 사무엘이 사사에서 예언자로, 그리고 영적 지도자로 완전한 역할을 수행하는 신학적 분기점으로 읽힐 수 있다.17)
6절에서 백성들이 행한 세 가지 행동은 모두 회개의 실천적 형식이다. 첫째, 물을 붓는 행위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 상징적 행위로, 학자들은 이를 자기 비움과 정결의 표지로 해석한다. 이는 그들이 자신의 생명을 여호와 앞에 쏟아붓듯이 내어놓는 항복의 표시로 이해될 수 있다.18)
둘째, 금식은 종일 지속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회개의 진정성과 철저함을 드러낸다. 금식은 자기 절제와 고통 동참의 상징으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태도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셋째,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는 자복은 이 회개의 모든 중심이 하나님 앞에 선 죄인의 고백임을 분명히 한다. 개인적 고백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연합하여 죄를 고백한 것이 이 본문의 중요성이다.19)
마지막 문장의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는 표현은 사무엘이 이 회개의 장면에서 단지 영적 중보자만이 아니라, 사사로서의 공식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정결케 된 공동체가, 하나님의 사람을 중심으로 재조직되고 재정비됨을 보여주는 전환점이다.
D. 사무엘상 7장 7-9절 주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이전 절까지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인도 아래 회개와 금식을 행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갱신의 현장에 블레셋이 공격해온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침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할 때 나타나는 영적 시험과 긴장의 표현으로도 읽을 수 있다.20)
“그들의 방백들이 올라왔다”(עָלוּ שָׂרֵי פְלִשְׁתִּים)는 블레셋의 지도자들이 조직적으로 공격했음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은 그들의 접근을 듣고 즉각적으로 두려워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며, 신앙은 시작되었으나 현실의 위협 앞에서 여전히 흔들릴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21)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쉬지 말고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요청한다. 이는 사무엘을 자신들의 대표자이자 하나님과의 중보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동시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은, 그들이 여호와를 이방의 신들과는 다른, 언약적 관계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부른 것을 뜻한다.22)
중보기도는 사사기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요소이며, 사무엘 시대 이후 예언자적 전통에서 두드러진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제 단순한 지도자(사사)보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줄 아는 ‘예배자’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23)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린다. 이는 가장 어린, 흠 없는 생명체를 드리는 것으로 순전함과 헌신의 상징이다. 히브리어 ‘올라’(עֹלָה, 번제)는 전체를 태워 드리는 제사로서,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지는 희생을 뜻한다. 사무엘은 그 제사를 드리며 동시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וַיִּזְעַק), 이는 감정적 외침이 아니라 간절하고 단절 없는, 언약 백성의 처절한 기도였다.24)
이 모든 과정은 사무엘이 단순히 종교적 행위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적·예언자적·사사적 사명을 하나로 통합하여 수행한 전형적 장면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וַיַּעֲנֵהוּ יְהוָה)는 말은 본문 전체에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드러내는 핵심 진술이다. 하나님은 단지 기도를 들으신 것이 아니라, 번제와 부르짖음을 기쁘게 받으셨으며, 응답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개가 열매 맺었음을 확증하신다.
E. 사무엘상 7장 10-11절 주해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바라시고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 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0절은 하나님의 구원이 사무엘의 번제와 동시에 개입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사무엘이 제사를 드릴 때, 블레셋이 공격하러 다가왔고, 바로 그 순간 여호와께서 ‘큰 우레’(בְּקוֹל גָּדוֹל)를 바라셨다. 이는 출애굽기 19장 16절(시내산 강림)이나 여호수아 10장(태양 멈춤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 하나님의 임재와 심판의 징표로 자주 사용되는 상징적 표현이다.25)
하나님은 자연의 요소를 사용하여 직접 전투에 개입하셨고, 그 결과 “블레셋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셨다”(וַיְהֻמֵּם). 이 단어는 혼란, 공황 상태를 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싸우기도 전에 대적의 질서를 붕괴시키셨음을 의미한다.26) 이 장면은 인간의 무력에 앞서,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이 먼저이며 결정적임을 강조하는 구속사적 장면이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어지럽히신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미스바에서 나아가 벧갈 아래까지 추격하며 블레셋을 격퇴한다. 여기서 주도권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까지 방어적 위치에 있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공격 주체가 되어 추격하며 싸운다. 이는 단순한 전술적 승리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회개한 공동체가 얻는 새로운 정체성과 권위를 상징한다.27)
‘벧갈’(Beth-car)은 정확한 위치는 불분명하지만, 이스라엘 북쪽 지역으로 추정되며, 그 거리만큼 블레셋이 멀리 패주했음을 시사한다. 단지 이긴 것이 아니라, 이방의 통치권과 위협을 완전히 뒤흔드는 승리였던 것이다.28)
이 전투는 하나님의 주도 하에 완전히 승리한 영적 전환점이며, 이후 “에벤에셀”로 이어지는 감사의 신앙 고백(12절)을 예비하는 결정적인 서사적 전환이다.
F. 사무엘상 7장 12절 주해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 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된 이후, 돌 하나를 취하여 그 사건을 기념하는 상징물로 세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기념비, 혹은 ‘기념 돌’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역사적 사실과 신적 개입을 후대에 전승하는 언약적 표지였다(창 28:18; 수 4:9).29)
이 돌은 단지 승리의 상징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과 기억을 붙드는 상징물로 작용한다. ‘미스바와 센 사이’라는 지리적 언급은, 이 사건이 실제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개입된 역사적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다.30)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עַד הֵנָּה עֲזָרָנוּ יְהוָה)는 고백은 단순한 과거 지향이 아닌,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신뢰까지 포함한 예배적 선언이다. ‘아드 헤나’(עַד הֵנָּה, 여기까지)는 공간적 표현이 아니라, 시간적 회고와 신앙적 고백이 결합된 표현으로 이해된다.31)
‘도우셨다’(עֲזָרָנוּ)는 ‘에제르’(עֵזֶר)의 동사형으로, 시편에서 자주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도우심을 뜻하는 표현이다. 이는 단지 위기에서의 탈출이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실존적 구원의 실체를 가리킨다.32)
‘에벤에셀’(אֶבֶן הָעֵזֶר)은 문자적으로는 “도움의 돌”을 의미한다. 이미 사무엘상 4장 1절에서는 동일한 지명이 이스라엘의 참담한 패배의 현장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사무엘은 그 패배의 기억을 구원의 고백으로 전환시키는 신학적 재명명을 행한다.33) 이는 실패를 통해 배우고, 회개를 통해 구속을 경험한 공동체가 신앙의 ‘기억 장치’를 설정하는 예배적 실천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예배, 역사, 공동체 기억, 언약, 신앙 교육이 하나의 행위(돌 세우기)로 통합되어 표현되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사무엘은 선포와 기도, 제사에 그치지 않고, 구원의 역사를 형상화된 상징물로 남김으로써, 후대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도록 기억을 조직화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추억’이 아닌, ‘기억의 신학’과 ‘예배의 신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Ⅲ. 결론 및 목회적 적용
사무엘상 7장 3–12절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속 한 장면이지만, 오늘날 교회와 신자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회개와 갱신, 예배와 구원의 통합된 신앙 여정을 제시한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다가, 고난 속에서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며,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흐름은 사사기 시대의 반복적 구조(타락–징계–회개–회복)를 따르지만, 사무엘이라는 중보자의 등장과 공동체적 회개의 구체성, 기념 행위의 신학화라는 측면에서 독특한 위치를 가진다.
1. 회개 없는 회복은 없다.
사무엘이 요구한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외침은 단순한 감정적 반성이 아닌, 전 인격의 방향성 전환과 실천적 우상 제거를 포함한다(7:3). 오늘날 신앙 공동체가 겪는 위기 역시, 단순한 프로그램이나 조직 개편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진정한 부흥은 항상 회개에서 시작되며, 그 회개는 실천적 결단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상’은 단지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모든 것이며, 그것이 제거되지 않으면 예배는 공허해진다.
2. 예배의 중심은 회복된 언약 관계다.
미스바에서 이루어진 예배(7:5–6)는 단지 전통적 절차의 회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죄를 자복하고, 금식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쏟아붓는 예배의 본질을 보여준다. 오늘날 교회는 회개의 예배, 하나님 중심의 예배, 공동체가 함께 고백하는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개인주의적 신앙은 공동체적 책임 고백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며 함께 죄를 고백했고, 하나님은 그 공동체를 새롭게 하셨다.
3. 중보자는 교회의 영적 허리다.
사무엘은 사사로서의 행정 지도자일 뿐 아니라, 제사장적 중보자이며, 예언자적 선포자였다(7:8–9). 그는 백성 사이에 서서 기도하고, 제사드리고,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이 장면은 오늘날 교회의 리더십이 중보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함을 교훈한다. 목회자의 핵심 사역은 결국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다. 리더는 기도하는 자, 눈물 흘리는 자, 돌을 세우는 자여야 한다.
4. 신앙은 ‘기억’을 통해 전승된다.
‘에벤에셀’은 단지 돌 하나가 아니라, 구원의 고백을 붙들게 하는 신앙의 기념비였다(7:12). 이 돌은 후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기억하고, 살아내게 하는 기억의 예배, 언약의 표지였다. 오늘날 교회도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조형물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 안에 새겨지는 고백과 전승, 그리고 반복되는 감사의 언어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망각하지 않고 기억할 때, 다음 세대에 살아 있는 복음으로 전해질 수 있다.
Ⅳ. 참고문헌
· 김지찬, 21세기 구약 주석: 사무엘상(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 박철현, BST 성경 강해: 사무엘상(서울: IVP, 2007)
· 이필찬, 성경의 맥: 사무엘상하(서울: 두란노, 2011)
각주-
1) 김지찬, 21세기 구약 주석: 사무엘상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151-168
2) 박철현, BST 성경 강해: 사무엘상 (서울: IVP, 2007), 93-100
3) 김지찬, op.cit, 151-168
4) 박철현, op.cit, 93-100
5) 김지찬, op.cit, 153.
6) 박철현, op.cit, 94.
7) 이필찬, 성경의 맥: 사무엘상하 (서울: 두란노, 2011), 63.
8) 김지찬, op.cit, 154.
9) 박철현, op.cit, 94-95.
10) 김지찬, op.cit, 155.
11) 이필찬, op.cit, 63.
12) 박철현, op.cit, 94.
13) 김지찬, op.cit, 156.
14) 박철현, op.cit, 95.
15) 김지찬, op.cit, 156-158.
16) 박철현, op.cit, 95.
17) 이필찬, op.cit, 64.
18) 김지찬, op.cit, 158.
19) 박철현, op.cit, 96.
20) 김지찬, op.cit, 158-159.
21) 박철현, op.cit, 96-97.
22) 이필찬, op.cit, 64.
23) 김지찬, op.cit, 160.
24) 박철현, op.cit, 97.
25) 김지찬, op.cit, 160-161.
26) 박철현, op.cit, 97.
27) 이필찬, op.cit, 65.
28) 김지찬, op.cit, 161.
29) 김지찬, Ibid, 162.
30) 박철현, op.cit, 98.
31) 이필찬, op.cit, 65.
32) 김지찬, op.cit, 162-163.
33) 박철현, op.cit, 9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