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야(광주 예일교회)
2025년 6월 16일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원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중적 유익에 대하여 논하라
서론
1. 연구의 배경과 문제 제기
기독교 신학에서 구원의 주제는 언제나 중심적 논의였다. 특별히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신자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이 강조되며, 칭의와 성화라는 이중적 유익이 신앙의 핵심 요소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는 칭의와 성화의 균형이 무너지는 현상이 자주 발견된다. 일부 교회는 칭의의 법적 선언만을 강조하여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성화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반대로 성화를 율법적 행위로 오해하여 복음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율법주의적 신앙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개혁주의가 본래 지향했던 칭의와 성화의 통합적이고 균형적인 신앙 생활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원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얻게 되는 칭의와 성화의 이중적 유익을 다시 명확히 하여,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실천적 신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연구 목적과 필요성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지닌 신학적 본질과 의미를 성경적, 신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와의 연합 개념을 중심으로 칭의와 성화가 어떻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이를 통해 현대 교회의 신앙적 혼란을 극복할 신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셋째, 칭의와 성화가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으로서 교회 공동체의 신앙 생활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며, 성례(세례와 성찬)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탐구하여 교회가 균형 잡힌 신앙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현대 교회가 직면한 신학적, 실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며, 이를 통해 신앙의 본질적 균형을 회복하고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3. 선행연구 검토 및 차별성
지금까지 칭의와 성화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다수의 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모든 구원적 은혜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으며,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성을 강조하였다. 루이스 벌코프와 헤르만 바빙크는 조직신학적 접근을 통해 이 두 유익이 연합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상호 보완적인지를 깊이 있게 분석하였다. 최근 나용화 박사는 ‘성경적 조직신학’에서 언약적이고 존재론적 차원에서 연합을 다루며, 이 연합이 성도의 실제적 삶과 공동체의 신앙적 실천에 필수적인 개념임을 설명하였다. 본 연구는 기존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진 현대 교회의 실천적 문제, 특히 반율법주의와 율법주의 사이의 극단적 경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삼위일체적 구속사 구조와 성례론과의 긴밀한 연관성 속에서 균형 잡힌 신앙생활의 실천적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성을 지닌다.
4. 연구 방법 및 구조
본 논문은 성경신학적, 조직신학적, 실천신학적 접근을 통합적으로 활용하여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성경 본문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연합 개념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주요 개혁주의 신학자들(칼빈, 벌코프, 바빙크, 나용화, 유해무 등)의 저술을 조직신학적으로 분석하여 이중적 유익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또한 성례론을 중심으로 한 실천신학적 접근을 통해 현대 교회가 실제로 이 신학적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탐구할 것이다.
논문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구원의 본질을 언약적 틀에서 분석하며, 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통한 구속 사역을 다룬다. 3장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신학적 의의와 성령의 사역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4장에서는 연합에서 얻게 되는 이중적 유익(칭의와 성화)을 다루고,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성례가 이 연합과 이중적 유익을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실제로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결론에서는 전체 연구를 요약하고 현대 교회를 위한 신학적, 실천적 제언을 제시한다.
Ⅰ.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본질
1. 창조와 인간의 원래 상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Imago Dei)대로 창조하시고(창 1:27), 그들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을 맡기셨음을 밝힌다(창 1:28). 이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존재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 창조 목적임을 나타낸다. 바빙크는 이에 대해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도덕적 책임을 지는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1)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으며(사 43:7), 하나님과의 연합 속에서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도록 계획되었다. 존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따를 때 가장 복된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하셨다”고 강조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하고 의롭게 창조하셨으나, 인간이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타락하였다”고 진술하며(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6장 1항), 인간의 원래 상태가 타락으로 인해 철저히 변질되었음을 강조한다.
2. 타락과 인간의 죄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을 요구받았다.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를 범하게 되었고,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를 거부한 반역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창 3:6-7),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완전한 관계가 단절되었으며, 죽음이 인류에게 들어오게 되었다. 로마서 5장 12절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나용화 박사는 이에 대해 “타락한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할 수 없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의로움을 회복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타락한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였으며, 하나님께로 향하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상실하였다”고 선언하며(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6장 2항), 인간이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강조한다.
3. 인간의 전적 부패와 구원의 필요성
이 타락 사건은 단순한 도덕적 실수나 개별적인 범죄 행위가 아니라, 인류 전체를 죄 아래 놓이게 한 근본적인 상태 변화였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부패(total depravity)에 빠졌으며,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능력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다. 이사야 64장 6절은 인간의 의를 ‘더러운 옷’에 비유하며,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로마서 3장 10-12절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선언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인간이 “영적으로 죽었으며, 모든 부분에서 부패하였으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어떤 선도 행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9장 3항).
4. 하나님의 구속 계획(언약의 틀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 하기 이전부터 이미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으며, 창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예정하셨다. 에베소서 1장 4-5절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선포한다. 바빙크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우연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정해진 언약적 약속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자들을 예정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방편을 제공하셨다”고 선언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 5항).
결국,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로운 개입이 필수적이 되었으며, 이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대속 사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 인간의 행위나 도덕적 노력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제공된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한다(행 4:12).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며, 인간이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이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엡 2:8-9).
Ⅱ.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통한 구속의 성취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은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각각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 직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이는 구약의 예표적 구조가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론적으로 성취됨을 의미한다. 헤르만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라고 지적하며, 삼중직이 인간의 모든 구속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구조적 틀임을 강조한다.4)
또한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인간 사회에서 구원자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삼중직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회복하시고 그의 통치를 실현하신다”고 강조한다.5) 카이퍼의 이러한 관점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단순히 개인적 구원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차원까지 확장됨을 시사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단순한 구원의 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온 세계에 미치는 방식을 이해하는 틀로써 작용한다.
나용화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선지자, 제사장, 왕직)은 구속사 전체를 통합적으로 이끄는 중심 구조로서, 인간의 죄와 타락을 온전히 회복하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핵심이다. 선지자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비밀을 계시하시고,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단번에 속죄 제물로 드리며 백성을 중보하셨고,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며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꺾으셨다. 이 삼직은 분리된 직무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구속 사역이며, 예수님의 공생애와 십자가, 부활, 승천, 현재의 중보 사역 속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다.6) 즉, 선지자직은 죄로 인해 왜곡된 진리를 회복하며, 제사장직은 죄의 형벌을 해결하고, 왕직은 죄의 지배를 무너뜨린다. 이를 통해 구원은 인간의 전인격적 변화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우주적 차원에서의 회복을 포함한다.
유해무 박사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개혁신학적 신앙고백에 있어서도 중심적이며, 특히 개혁주의 교회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7) 이는 개혁신학이 삼중직을 단순한 개인적 경건의 차원에서만 다루지 않고, 교회의 사명과도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점을 보여준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의 선지자적 사역을 계승하여 진리를 선포하고, 제사장적 사역을 계승하여 중보하며, 왕적 사역을 계승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해야 한다.
존 파이퍼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단순한 직무 수행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과 기쁨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며, 삼중직을 기독교의 궁극적 기쁨과 연결한다.8) 즉,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로서 참된 진리를 계시하시고, 제사장으로서 자기 백성을 위한 완전한 희생을 이루시며, 왕으로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고 보호하신다. 이를 통해 그분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완성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 개념은 개혁주의 신학에서뿐만 아니라 초기 교회 신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단순한 도덕적 본보기가 아닌 구속적 사역임을 강조하는 데 기여한다”9)고 지적한다.
웨인 그루뎀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신자의 신앙과 신학적 이해를 구조화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개념으로,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전체적인 구원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한다”10)고 설명한다.
예수님은 단순히 이 세 직분을 개별적으로 수행한 것이 아니라, 한 분 안에서 이들을 온전히 통합하고 완성하셨다. 따라서 삼중직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신학적 개념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문답 26에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만왕의 왕으로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고 보호하시며, 그의 원수들을 정복하신다”고 설명하며, 삼중직이 단순한 신학적 구조가 아니라 신자들의 신앙과 교회의 실제적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구약의 예표적 직분을 완성하는 동시에, 개인적 구원과 공동체적, 우주적 차원의 회복을 포함하는 종말론적 사역을 의미한다. 이는 신자들에게 단순한 교리적 이해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과 사역을 따르도록 요청하는 신학적 기초가 된다.
1. 선지자적 직분: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의 직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인간의 무지와 영적 어두움을 밝히는 사역을 감당하셨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하였으며, 이로써 하나님의 뜻과 계획, 경고와 위로를 선포하였다(렘 1:5; 사 6:8-9). 그러나 그들의 계시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것이었다(히 1:1). 신약은 이러한 구약 선지자들의 역할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었음을 증언한다.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고 예언하였으며, 사도행전 3장 22-23절에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인용된다. 예수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였다(요 1:1, 14). 그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아시며(마 11:27), 이를 온전히 계시하신 분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43문은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에 대해 “그리스도는 교회의 건덕과 구원에 관한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모든 세대에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여러 가지의 시행방법으로, 교회에게 계시하심으로써 선지자 직분을 수행하십니다”고 밝히며, 그리스도의 계시 사역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구원의 실제적 적용과 공동체 형성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유해무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선지자들과 달리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말씀 그 자체이신 로고스로서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셨다.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구현된 계시 사건이었다”고 설명한다.11)
나용화 박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은 구속사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는 계시 사역이다. 이는 단순한 예언이 아닌, 그의 가르침과 삶 전체가 통합적으로 작용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선포하고 실현하는 방식이며, 예수님은 직접 복음을 선포하시고(마 4:23),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치셨으며(마 13:11), 하나님을 친히 계시하셨다(요 1:18).” 설명한다.12)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적 사역은 구속사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계시로 작용하며, 이는 그리스도의 권위 있는 가르침, 기적, 삶의 본이 통합적으로 작용함을 통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말씀을 선포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자기의 삶을 통해 성취하신 분이시다(요 14:9).
D.A. 카슨은 “예수님의 선지자적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심판, 회복을 동시에 선포하는 종말론적 계시로서, 선지자직의 완성”이라고 평가한다.13) 그는 예수님의 선지자직이 구약의 예언과는 달리, 종말론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복음서 전반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 선포, 산상수훈, 비유, 기적의 사역이 바로 그 계시의 현현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은 하나님의 뜻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온전히 계시하고 성취하는 사역이다. 그분의 계시는 단편적인 부분이 아니라 온전한 구속사의 절정이며, 인간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작용한다(요 17:3).
2. 제사장적 직분: 완전한 대속과 중보
